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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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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의 날들


BY 리아(swan) 2000-12-29

몇년만에 찾아온 거리다
낮설지가 않아 오히려 부담스럽다
눈바람인지 바닷바람인지 볼을 스치는 강도가
애사롭지 않다.
네온의 불빛마저도 밀려오는 인파에 묻혀 추위를
녹일것같지는 않다.
휘돌아가는 불빛과 물결치는 인파에 난 잠시 현기증을
느끼며 방향 감각을 잃은것 같았다.
낮익은 건물을 찾고 있었다.
그 건물을 중심으로 걸음을 옮겨야 좀 정리가 될것 같았다.

80대초 난 눈감고도 이거리 어느 골목이든 찾을수가 있었다.
가끔씩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골목 어귀마다 전경들이
부동자세로 서있던 그시절의 암울했던 그풍경을 빼고는
별로 달라진건 없는데 난 많이 허둥대고 있다.
이거리 이문화에 난멀리 동떨어져 있나보다.

그친구가 재수를 하여 대학에 들어갔다.
그때 학원 스승이던 분이 그 친구의 대학앞에서 당구장을 열었다.
스승이 하는 당구장이고 그친구는 당구광이라 그의 매일
당구장엘 드나들었다.
우리집이 마침 그 근처에 있어 나도 그 친구와함께 자주가곤했다.
내가 그곳에 자주가는 이유는 당구에 관심이 있어서도 아니고
그친구가 그기 매일 와 있어서도 아니었다.

자주 가다보니 그 친구의 선생님을 나도 잘 따르고
존경하게 되었다.
그 선생님은 사람을 끄는 묘한 느낌을 풍기는 분이었다.
탁월한 재담도 있었지만 뚜렷한 자기만의 철학적인
이미지랄까 인품에서 풍겨나는 무한한 꿈의 세계로 이끄는
생의 참의미 같은것을 가지게 해주는 분이었다.

그분이 학원강사 였지만 존경하고 따르는 제자들도 많았다.
그렇게 그분을 안지 몇개월이 지난 82년 오월쯤이었다.
축제기간이라 강의가 없어 집에있는데 친구의 전화를 받고
당구장엘 갔다.
평소에 나오지않던 사모님이 당구장을 지키고 있었고 몇몇
제자들이 당구장일을 도우고 있었다.
사장님은 3일째 행방이 묘연했고 친구분들도 친척들도
그누구도 그분의 소식을 아는 이가 없었다.
가족들은 선생님이 어디계신지는 몰라도 어디에 가신지는
알고 있는듯했다.
나도 선생님의 소식이 궁금했다.

나는 집으로 돌아와 외삼촌에게 전화를 걸었다.
평소에 외삼촌은 우리집에 오실때는 검은 짚차에 두세명의
군인을 대동하고 삼촌은 사복을 입고 왔던터라
삼촌은 뭔가 알수 있을꺼라는 짐작이 갔다.
난 삼촌에게 전화를 걸다 도리어 된통 야단만 들었다.
학생녀석이 제 할일이나 잘할 것이지 엉뚱한것에 신경쓴다며
야단만 한바가지 얻었던것이다.

그런후 일주일이 지나고 8일째 그선생님은 아주 딴사람이 되어
돌아왔다는 친구의 말을 들었다.
선생님은 외출도 삼가셨고 당구장에도 얼굴을 비치지 않았다.
그분을 그렇게 만든 주원인이 학생들과의 자유로운 대화가
걸림돌 이었다니 참 걸맞는 이유같았다

더이상 그분과의 대화는 없었다.
선생님의 침묵은 몇년간 계속되었다.
그가 받은 상처를 침묵으로 일관해야 했던
그세월이 얼마나 지옥 이었을까?
그 어둠의 긴 터널을 빠져 나오기에는 정권이
바뀌고 나서야 가능했다니 비참한 시절이었다.

꿈을 꿀수없던 바람같은 그시절 그분은 말이 통했고 가슴을 함께
열어주던 그런분이었다.
그분은 지금 어디에서 어떤모습으로 또 다른 바람을 맞고있을까
지금도 그거리에는 그분의 자유가 떠다니고 그분의 철학이
살아있는 듯 했다.
그때나 지금이나 여전히 젊음은 그래도 아름답게 물결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