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자알 묵었다''
배를 두드리며 식당을 나선다.
일주일에 한번은 꼭 점심을 순대국밥으로 해결한다.
사무실 가까이 있는 순대국밥집은 옆 건물 지하의 조그만 공간에 자리잡고 있다. 좌석이라야 고작 상이 여섯개...조그마한 식당이다.
얼큰한 순대국밥을 한그릇 먹고나면 배도 부르고 영양가도 만점.
게다가 값까지 싸다. 돌아서서 나오면 세상에 부러운 것이 없다.
그 순대국밥집을 찾는 또 한가지 이유.
간 맞추라고 딸려나오는 새우젓 때문이다. 분홍과 하얀색이 적절하게 버무러져 입안에 침부터 고이게 만드는 그 새우젓 때문이다.
어릴적에는 일년에 한두번씩 꼭 감기에 걸렸다. 그 당시는 또 감기만 걸렸다하면 독감으로 발전하는 것이 공식이었다. 독감이 시작되면 심한 열이 나고, 입안이 바싹 마르면 혀는 맛을 느끼는 본연의 임무를 망각해 버린다.
식구들이 둘러앉은 두레상에 보이는 맛있는 반찬들. 평소에 그렇게 많이 먹으려고 다투던 반찬들도 심드렁해진다. 혹시나 싶어 이불 속에서 몸을 빼어 맛을 보지만...아무런 맛도 느껴지지 않는다.
평소에 그렇게 먹고 싶어 애태우던 복숭아 간즈메(통조림)도 독감이 걸리고나면 아무런 맛도 없다. 단지 입안에서 서걱거리는 느낌뿐...
결국 아픈 것도 벼슬이라고 어머니에게 짜증을 부리고 괜히 형이나 누나에게 심통을 부린다.
그럴때 어머니는 꼭 흰죽과 함께 새우젓을 내어오셨다.
그당시 우리집 상위에 소고기국이 올라오면 식구 중의 누군가가 생일이란 뜻이며, 새우젓이 올라오면 식구 중의 누군가가 병 중이란 뜻이었다며 요즘도 형제들이 모이면 웃으며 이야기를 한다.
희안하게 아무리 독감이 심할 때라도 새우젓의 그 짭짭한 맛은 희미하게나마 느껴졌다. 그러다보니 흰죽 먹기가 편하고 병 중이라도 죽을 열심히 먹다보면 회복 속도가 빨라졌었다.
그 새우젓 맛이 완연히 짭게 느껴지면 그것은 독감이 다 나았음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순대국밥 집의 새우젓을 보면 독감이 생각나고, 독감이 생각나면...
몸이 병 중이니 어찌 깊은 잠이 들 수 있으랴. 판피린에 하얀 약봉지 가루약을 삼키고 약기운으로 잠시 열내린 틈을 타 얇은 잠 속에 빠져들라치면 희미하게 느껴지는 어머니의 발걸음소리...곧 이어서 이마에 닿는 어머니의 손. 시원하고 포근한 어머니의 약손. 스르르 빠져드는 깊은 잠. 이른새벽에 약먹으라 깨우시는 어머니의 음성...이 느껴진다.
작은 종지에 엄지손가락만큼 담겨나온 새우젓을 보면 나는 어느새 그 속에 숨겨진 깊고 큰 어머니의 사랑을 느끼는 것이다.
어찌 아끼랴.
듬뿍 집어넣고 휘휘 저어 맛있게 먹는다. 순대국밥 속에 스며든 어머니의 옛사랑을 푹푹 떠먹는다.
''아~ 자알 묵었다''
배를 두드리며 기분 좋게 식당문을 나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