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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별(3)


BY 영자 2000-07-15


(우선 제가 이 글을 쓰면서 죄송스런 마음이 듭니다. 혹 제 글을 읽고 너무 우울해지시는 건 아닌가... 해서요. 전 제 경험을 들려드리고 혹 주위에 저와 비슷한 상황이 생긴다면 조금이나마 보탬이 되고 싶어 올리는 거거든요.)


남편과 내가 '양수가 적다'는 것을 첨 알았을 때부터 그러니까 임신 4개월이 지나면서부터, 다니던 개인병원의 의사선생님께 물었었다. '양수를 넣을 수는 없는 겁니까?' 수없이 반복해 물었지만 그런 방법은 없다고 분명히 말했었다. 그렇다고 양수를 늘릴 수 있는 자가요법도 없었다. 나는 그저 물과 우유와 쥬스를 하루에 500리터 이상씩 의무적으로 마시기 시작했었다. 몸안에 수분을 늘리면 조금이나마 양수가 생성되는데 도움이 될까 싶어서....

그랬었는데... '일단 양수를 넣어봅시다!'라는 의사선생님의 말씀을 듣는 순간,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라는 말만 입속으로 되풀이하고 있었다. 아기가 있는 배 언저리를 어루만지면서...

서울중앙병원 응급실을 통해 도착한 초음파진단실에서 '고위험 산모 전문가'이신 의료진의 검사가 시작되었다. 정밀한 초음파 검사를 하고 난 후 다음 날 오전 8시 30분 '양수주입시술'을 하기로 결정했다. '드디어 양수를 넣게 되는구나!' 정말 꿈만 같았다.

양수주입시술을 하는데도 사전 동의가 필요했다. 양수주입시술은 우선 초음파로 자궁안을 보아서 아기가 다치지 않도록 비어있는 공간을 찾아야 한다. 물론 양수가 조금이나마 있는 공간 중에서... 나는 양수가 10%도 안되는 상황이라 그럴 수 있는 공간이 딱 한군데밖에 없었다. 거기에 정확하게 바늘을 찔러 넣는 것이 관건이었다. 양수주입시술을 하는 것은 기형아 검사를 위한 '양수검사'를 하는 때와 비슷하여 시술을 하다가 혹 자궁수축이나 진통,출혈이 올 수 있다. 만약 자궁수축이나 진통, 출혈이 오면 곧바로 수술에 들어가야 한다. 수술은 전에 대학병원에서도 말했다시피 재왕절개 수술을 해야 한다고 했다. 한가지 달라진 점은 내가 완전전치태반은 아니라는 것이다. 그러나 어렵기는 마찬가지 상황으로 설명되었다.

'양수가 없다, 진통이나 수축이 오면 바로 재왕절개 수술을 해야 한다, 아기도 거꾸로 있고 탯줄이 아래 자궁입구 쪽에 있기 때문에 절개는 보통 가로가 아닌 세로로 절개를 해야한다. 마찬가지로 태반을 떼어내다가 출혈이 멈추지 않으면 산모의 생명이 위험하다. 수혈로 해결되지 않으면 자궁을 드러내야 한다. 너무 이른 조산이라 아기를 살릴 수 있는 확률은 거의 없다.'

이것이 내가 양수 주입시술을 받기 전에 의사로부터 들은 얘기들이다.

다음 날 오전 8시 30분 양수주입시술이 진행되었다. 나는 새벽부터 아기와 함께 계속 대화를 나누었다. '아가야, 우린 할 수 있어. 우린 잘 할 수 있어. 아가야 양수를 넣을 수 있대. 양수를 넣으면 네가 좀 더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어. 아가야 양수를 넣고 우리 한번 버텨보자. 자... 이제 시작이다.. 아가야 바늘이 들어간다.' 나는 이렇게 아가에게 되뇌이며 심호흡을 깊게 했다. 배에 바늘이 찔려졌고 그 바늘이 살을 통과하는 것을 느꼈지만 난 아프지 않았다. 이를 악물로 아기에게 계속 얘기를 걸었다. 눈에선 눈물이 흘렀다. 30여분에 걸친 시술이 끝났을 때 내 배는 눈에 띄게 부풀러 있었다. 아기가 막 움직이기 시작했다.

관건은 주입한 양수가 더이상 아래로 흐르지 않아야 하는 것이었다. 하루종일 한 방울의 양수도 새지 않았다. 저녁 회진 때 의사선생님께서 경과가 좋으면 내일 아침 초음파 검사로 양수 양을 측정해보고 이상없으면 일반 병실로 옮기고 거기서 한 1주일 안정하다가 퇴원해도 좋다는 말씀을 하셨다. 남편과 엄마는 너무 기뻐하셨다.

그런데 다음날 새벽 6시 30분, 초음파 검사를 하러 침대에서 일어서는 순간 아래로 뜨끈한 것이 흘렀다. 초음파 검사를 마치고 침대에서 내려오는 순간 다리를 타고 흘러내리는 양수... '어! 어떻해요... 어떻해요...선생님... 양수가 막 흘러요...' 난 정말이지 절망적이었다....

그 날 오후 다시 양수주입시술이 시행되었다. 이번에 배에 호스를 끼워 링거를 맞듯이 양수를 지속적으로 주입시키는 방법이었다. 의사선생님의 말씀으로는 이것이야말로 정말 최후의 방법이라고 했다. 이렇게 양수를 며칠 지속적으로 흐르면 채우고 흐르면 채우고 하다가 어느순간 더이상 양수가 흐르지 않는다면 그 때는 성공이라는 것이다. 배에 호스를 끼는 작업은 바늘을 꽂는 작업보다 어려웠지만 이 또한 아프지 않았다. 그 날 밤은 정말 길었다. 배에 호스를 끼고 양수를 계속 주입시키고 자궁수축 억제제를 맞았다. 자궁수축억제제를 맞으면 손이 떨리고 가슴이 답답하고 호흡이 가쁜 현상이 온다고 했다. 가만히 손을 들어보았다. 손이 가늘게 떨렸다. 그러나,,, 그런 것은 아무래도 좋았다.

양수주입을 위한 호스를 배에 끼고 나서 5일을 누워지냈다. 양수는 아래로 계속 조금씩 새어나가고 있었다. 하루에 양수를 1리터 가까이 넣기에 이르렀다. 하루가 지나고 이틀이 지나면서 가장 견디기 힘든 것은 누워있는 것이었다. 옆으로 돌아눕지도 못하고 그대로 일자로 누워 지내는 시간... 어깨가 아프고 등이 너무 아파 밤새 잠을 자지 못할 정도였다. 배에 바늘이 꽂혀있는 것도, 링거도, 주사도, 피를 뽑는 것도 하나도 아프지 않았다. 화장실을 못가는 것도 참을 수 있었다. 그러나 등이 아픈 것은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다. 아기에게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정말 하루도 더 견딜 수가 없다는 생각이었다. 내가 견딜 수 없다는 것은 수술을 의미하는 것인데... 그건 아기에겐 치명적인 일일 수 있었다. 정말 힘든 시간이 지나갔다.

마침내 의사선생님이 말씀하셨다. '더이상 버틸 수가 없습니다. 이대로 4주, 아니 최소한 2주만이라도 더 끌 수 있으면 좋으련만.... 더이상 힘들겠습니다. 이대로 양수주사를 놓다보면 태아나 산모의 자궁이 감염상태에 이릅니다. 태아의 폐를 성숙시키기 위한 주사를 이틀간 맞은 후에 수술을 해서 아기를 낳아야겠습니다.' 나도 더이상 버틸 수가 없었다. 또다시 아기와의 대화가 시작되었다. '아가야, 이제 네가 세상에 나와야 한대. 우리 잘 할 수 있지? 아가야 넌 나를 지켜주고 난 너를 지켜주기로 했잖아. 우리 잘 해보자. 엄마 뱃속이 상태가 안좋으니까 네가 나오려 하는거지? 세상에 나오면 네가 있을 수 있는 곳이 있어. 인큐베이터 안에서 선생님들이 잘 키워주실꺼야... 아가야... 우리 잘 할 수 있지?'

병원에 있는 동안 보내주신 여러님들의 격려편지, 선물을 받고 아가와 함께 용기를 얻었었다. 옆에서 고생하시는 친정엄마, 불심으로 노심초사하시는 시어머님, 하루가 멀다않고 찾아오시는 시아버님,,, 그리고 일과 '나' 사이에서 무척이나 힘들어하던 남편... 그리고 가슴앓이하던 자매들....

수술을 앞두고 많은 생각이 들었다.
내가 만약 초기에 하혈할 때부터 이 병원에 와서 진단을 받고 더 조심했더라면... 아니 양수가 적다고 하던 그 시점에라도 여기에 왔었더라면... 내가 하혈을 하거나 양수가 적다고 했을 때 내가 다니던 산부인과에서 이런 병원이 있다는 것을 알려만 줬어도... 급하게 찾아간 대학병원에서도 '양수주입술'은 국내 어디에도 없다고 했는데... 이런 방법이 있다는 것을 조금만 일찍 알았더라면... 별의별 생각이 다들었다. 아니...그래도 다행이야. 그래도 대학병원에서 금방 수술을 안했기 때문에 여기까지 올 수 있었어. 만약 개인병원에서 수술을 했더라면 내 생명까지 위험했을지 모르잖아. 그래도 여기서 수술을 받게 된 것이 나에겐 행운이야. 이 병원에서는 4백몇그램의 아기도 살렸다잖아... 물론 30주가 지나 태어났긴 했지만... 최선을 다한다고 했으니까 울 아기도 살 수 있을꺼야. 그리고 나도 살 수 있을꺼야...

이런 많은 생각 속에 잠이 들었다.

다음날 오전 11시 30분 난 수술실로 옮겨졌다. 수술대기실에서 엄마와 시어머니, 시아버지 얼굴을 뵈었다. 남편이 끝까지 손을 잡아주었다. 혹 이사람의 얼굴을 다시 못보는 건 아닐까? 두려웠다. 할 얘기도 많은데...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그러면 정말 그게 마지막 얘기가 될까봐... 그래서 난 남편에게 손을 흔들면서 수술실로 들어갔다. '나 갔다올께... 걱정마...' 그렇게 얘기하며...

수술실 안은 너무 추웠다. 마취를 하기 전까지 온 몸이 떨려서... 두려움인지 추워서인지... 죽을 것만 같았다.

'기분은 어때요?' 김암교수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좋아요'라고 대답했다. 그리고 아기에게 말했다. '아가야.. 잘 할 수 있지? 우리 좀 있다가 보자...' 이렇게 말하고는 난 마취주사를 맞았는지... 금새 정신을 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