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발이란 낯선 환경에 처한 발바닥에 서서히 물집이 잡히고 있었다. 오른 발 발가락에 힘을 주어 발가락을 모으고 걸으니 좀 덜한 것 같았다.
주변을 지나는 사람들의 이상한 눈빛을 감당하기 어려워 고개를 푹 수그리고, 온 신경이 발바닥에 쏠린 채 절뚝절뚝 걷다보니 어느새 그 골목에 들어서 있었다.
중학교도 입시가 있던 시절이라 5학년인 형은 언제나 나보다 일찍 학교에 갔다. 국민학교 2학년초의 어느 날, 학교 가는 길. 같은 반 친구를 길에서 만났다. 아직 학년이 바뀐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서로들 조금은 어색한 시기.
"니 이런 거 할 줄 아나?" 그 친구가 물었다.
"어떤 거...?"
"이거 하민서 학교가마 빨리 가는데..."
"그기 뭔데...?"
그 친구는 운동화가 좀 작은지 뒤쪽을 구겨 신고 있었는데...앞으로 휙 차니 그 운동화가 마치 비행기처럼 저만치 날아가다 떨어졌다. 그리고는 깨금발(한쪽발로 뛰는 것)로 깡충깡충 뛰어가서 그 신발을 다시 신었다. 그 친구가 나를 돌아보며 씨익~ 웃었다. 나도 어리둥절한 눈으로 씨익 웃다가 둘 다 서로 마주보며 까르르 한참을 웃어댔다.
우린 금방 친한 친구가 되었다.
그 놀이는 내가 아직 한번도 상상해보지 못한 아주 자극적이고 신나는 놀이였다. 날개 달린 운동화가 빙글빙글 하늘로 날아올랐다가 떨어지는 모습은 아름다운 곡선이었다.
물론 그 친구는 그 놀이의 합리적인 규칙도 정해두고 있었다.
''사람이 있을 때 하면 안 된다.''
''너무 높이 차면 안 된다.''
앞서거니 뒷서거니 깔깔대면서 하던 그 놀이는 모든 놀이가 그렇듯 시합으로 변질되어 갔다.
''누구 신발이 멀리 날아가나~''
이미 그 놀이에 익숙한 그 친구의 승률이 점점 높아지자 나는 점점 초조해지기 시작했다.
''이번에는 이겨야지...'' 숨 한번 크게 들여 쉬고 냅다 발을 내지르는 순간, 아차! 하는 느낌이 왔다. 물론 아름다운 비행이긴 했지만 방향이 이상했다. 좁은 골목 길. 신발은 왼쪽으로 비상하더니...툭!. 길옆의 집 슬레트 지붕 위에 떨어졌다.
떨어지는 소리가 요란하게 나고 내 친구와 나는 얼른 골목 안쪽으로 숨었다. 누가 나오는 듯 했다. 겁이 나서 내다보지도 못하고...그 친구도 의외의 사태를 해결할 능력이 없어 보였다. 물론 나도 자초지종을 설명하고 그 신발을 내려 달랠 용기가 없긴 마찬가지였다.
학교에 갈 시간은 다가오고...할 수없이 나는 양말을 가방에 구겨 넣고 한쪽 발은 맨발인 채 학교로 갔다. 갑자기 모든 사람들이 나만 쳐다보는 것 같이 느껴졌다.
친구들의 놀림도, 발 아픔도 견딜 만은 했다. 그러나 그 사고를 집에 가면 말해야된다는 사실이 수업 내내 마음을 천근만근 무겁게 만들었다.
그 슬레트 지붕 위에는 내 오른쪽 파란색 운동화가 아침 모습 그대로 날개를 접은 채 쉬고 있었다. 눈물이 핑~ 돌았다.
"익이 오나~"
어머니는 여느 날과 마찬가지로 따뜻한 목소리로 날 맞이하셨다. 그 목소리를 듣자마자 갑자기 굵은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고개를 푹 숙이고 어깨에 맨 가방도 내려놓지 않은 채 손등으로 눈물을 훔치면서 꺼이꺼이 울었다. 왜 그리 서럽든지...
늘 그렇듯 내가 감당할 수 없는 사고에 대해 어머니는 늘 관대하셨다. 손등으로 눈물을 닦아내며 두서없이 말하는 내 말을 다 들으신 어머니.
"아이구 이 놈아~ 발은 안 아푸더나..."
그 말 한마디로 날 용서하셨고, 큰형은 잠자리채를 가지고가서 그 신발을 내려오고, 누나들은 내 발에 잡힌 물집을 터뜨리고 소독을 해준다고 부산을 떨면서 그날의 사고는 마무리되었다.
아침에 문을 나설 때 현관에 놓인 초등학교 2학년 짜리 내 아들의 운동화를 보면, 35년 전 아침 햇살을 받으며 힘차게 하늘을 날아오르던 그 날개 달린 운동화가 생각나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