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아이가 유치원 다닐적이던가 TV를 볼때면 자꾸만 앞으로
다가가는 거였습니다.
처음엔 그저 아이들의 호기심 때문에 그러려니 무심코 넘기다가
유치원에서 시력검사를 할 기회가 있었지요.
검사결과에 의하면 아주 눈이 나쁜 아이들 중에
우리 아이가 있다 했습니다.
안경점에서는 난시가 심하다고 하더군요.
평생 안경을 쓰던지 렌즈를 끼던지 하여야만
해야할 아이를 두고 난 참 걱정이 많이 되었어요.
안경을 쓰지 않고 세상을 잘 볼수 있다는 건
분명 행복한 일인 것 같습니다.
아직도 처음 시력검사를 했을 때와 같은 시력을
유지하고 있는 나는 눈이 나쁜 사람의 고충을 잘
알지는 못합니다.
그런데 바로 딸아이가 그러다 보니
안경을 씀으로 인하여 빚어지는 불편함과
얼굴 모양이 변한다던지 하는......
일련의 여러가지 우려가 마음을 복잡하게 하곤했지요.
어제는 새로이 안경을 맞추러 안경점엘 갔답니다.
마음이 한껏 심란한 엄마는 안중에도 없이
안경테를 어떤 것으로 할까.....
동그랗고 초롱 초롱한 눈망울을 이리 저리
굴리고 있는 아이를 보며
난 또 마음이 아프더군요.
평생 눈 때문에 신경쓰고 살아야 할 아이가
난시가 심하면 머리도 아프다고 하던데
6개월 마다 시력검사를 다시하며 안경을 조절해야 하고
그 모든 것들이 엄마에겐 큰 부담이 되고 있었습니다.
어떤 것들이 원인이 되어 시력이 나빠질 수 있는지
안경을 어떻게 써야 제대로 쓰는 건지
난시는 교정될 수 있는 건지
무수한 질문을 쏟아내며 안경점의 직원을 귀찮게 한 연후에야
새로운 안경을 아이에게 씌워 주고 그곳을 나왔지요.
아이는 안경을 쓴다는 사실이 마냥 신나는 일쯤으로 여기는 건지
아이스크림 하나 입에 물고 엄마 팔장을 끼고 사뿐 사뿐 가벼운
걸음으로 집으로 돌아오는 길.....
엄마의 마음은 그리도 무겁기만 한데.....
집에 가야 늦은 저녁을 먹을 게 뻔하기에 아이들을 데리고
모처럼 갈비집엘 갔어요.
잘 먹이면 좀 나아질까 ..... 앞으론 신경 많이 써야 겠는 걸.....
그동안 엄마노릇을 어떻게 한 거니.....
혼잣말을 늘어놓으며 연신 갈비를 먹어대는 아이들의 입을
말없이 바라다 보았습니다.
눈깜짝할 사이 갈비 3인분을 먹어치우는 아이들을 보면서
그 아이들이 자라고 있음을 느낄수 있었습니다.
배부르고 신나하는 아이들을 데리고 오랜만에 아파트 단지 안의
벤치에 앉아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어 보았어요.
자 지금부터 엄마의 좋은 점 10가지만 말해 보자.....
내가 제안을 하니
큰 아이가 첫번째로 꼽은 건 엄마가 통통해서 좋다는 거였습니다.
하긴 통통한 작은 아이가 예쁘기는 하더라구요.
아이들의 눈에 비친 엄마는 다행히도
예쁘고, 음식 잘 하고, 청소 잘 하고 ..... 등등의 좋은 이야기만
늘어 놓는 거였어요.
우리집은 참 행복하다고.....
아홉살과, 일곱살의 눈에 비친 세상은 참 따뜻했습니다.
한참을 그렇게 벤치에 앉아 옆자리가 비어 있음을 못내 마음에
걸려했지만 난 잠시 아주 느긋한 행복에 젖어들수가 있었습니다.
내가 아이들에게 어떤 엄마여야 하는지를 알게 해 주는
아이들이 참 예뻤지요.
그리고 그만큼 건강하게 내 곁에 있어줘서 고마웠어요.
늦은 퇴근을 마친 아빠의 어깨를 주물러 대며 딸아이들은
아빠에게 말했습니다.
아빠! 엄마 많이 사랑해주세요......
뜬금없이 이건 또 무슨 말이지?
엄마 아빠의 눈이 일제히 커지며 서로를 바라보니
아이는 답을 쓰듯 그렇게 말하더군요.
아빠가 엄마를 많이 사랑해 줘야 예쁜 아기를 나을 수 있다나
뭐라나.....
우리 가족은 한 바탕 웃었습니다.
엄마가 한 가정의 해와 같이 집안을 밝게 비추는 존재라면
아이들은 아마도 집안에 사시 사철 꽃을 피워내는 꽃나무와
같은 존재가 아닐까요?
아빠는 아마도 드러내놓고 잘 하는 것 같진 않지만
언제나 든든하게 가족 모두에게 버팀목이 되고 있다고 할 수
있을까요?
남편은 오늘도 새벽같이 1박 2일 여정으로 출장을 갔습니다.
그의 삶이 헛되지 않게 나는 오늘도 내 아이들을 잘 거두며
100년지기 농사를 짓는 마음으로 우리 꿈나무들에게
사랑이란 거름을 넉넉히 채워주려 합니다.
때때로 엄마말 안 듣는다고 엉덩이를 때려주는 아이들이지만
참 사랑스런 아이들입니다.
세상의 모든 부모들이 그들로 하여 세상사 시름을 잊고서
오늘도 그리 살아가고 있을테지요.
뭐 거창한 걸 바라기 보다는
어쩌면 가장 평범하게 사는 것이
가장 큰 행복인지도 모릅니다.
하루에 몇번은 크게 소리내어 웃을 수 있고
안경을 쓰지 않고도 맑은 세상을 잘 바라다 볼 수 있고
아이들에게 채워줄 사랑이 아직 나의 가슴에 남아 있고
그러면 되는 거 아닐까요?
너무 많은 걸 바라지 말아야 겠습니다.
핑크빛 안경을 쓰고 학교다녀오겠습니다를 외치는
아이들의 뒷모습에도 행복은 묻어 있었습니다.
잘 다녀와 엄마의 따뜻한 말한마디에 행복하게 하루를
열었을 그 아이들의 해맑은 미소는 참 곱기만 합니다.
오늘 아침엔 가을 바람이 더 없이
상쾌하게 다가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