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간 봉투에 내 이름이 씌어진 카드를 열면 서로 손을 뻗치고 있는 눈사람이 마주 안고 서있다, 그리고 손수 펜으로 쓴 정다운 인사말 이 나를 미소짓게 만든다.
특히 "멋져 보여요" 하는 대목은 나를 살 맛나게 한다,
"멋지다" 이 얼마나 멋진 칭찬의 말인가?
카드를 닫으면 안고 있던 눈사람은 서로 포개어 지면서 말한다, "아~ 따듯하다!"
오늘 내가 영어학원에서 클라스메이트 M으로부터 받은 크리스마스 카드이다.
수업이 끝난 후 슬며시 뒤따라온 앨리스, (역시 우리 반 학생이다)
트위티(Tweety) 그림이 붙은 필통을 선물한다, 내게 필요한 물건이다.
필통에 매달린 캐릭터가 눈이 크고 귀여운 것이 만화주인공인 것 같다.
무심한 나는 나이 값도 못하고 우리 반 친구들 선물을 하나도 준비하지 못했다,
아니, 미쳐 생각도 하지 못 했다는 것이 솔직한 고백이다.
크리스마스가 특별한 감흥을 불러일으키기에는 내가 너무 무디어졌나보다.
난 오늘도 젊은 그들에게서 새로운 삶의 방식을 배운다.
까다로운 발음은 따라하지도 못하고 문법에는 실수 투성이인 나를 그들은 같은 반 학생으로 동등하게 대우 해 줄뿐만 아니라 형편없는 어휘력으로 말도 안 되는 논리를 내 세우는 토론 시간에도 내 뜻을 이해하려 고개를 갸웃거리며 경청해주는 아량도 갖고 있다.
영자신문에 실린 뜨거운 논쟁거리를 복사해 메일로 보내주며 "어떻게 생각하세요?" 내 의견을 묻는 신중한 정치학도도 있다, 사실 정치적인 논쟁이야 우리말로도 어렵지 않은가?
나이로 치자면 아들, 딸 같지만 그들은 나를 항상 "큰언니" 혹은 "누나" 쯤으로 대우해 준다,
"하이, 수지!" 손을 들어 아는 척 하며 친구처럼 내 이름을 자연스레 불러 주기도 한다.
아예 "엄마" 라고 부르며 너스레를 떠는 녀석들도 있다.
내가 어떻게 불리 우는가 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
그들에게서 어떤 대우를 받느냐 또한 대수롭지 않다.
내가 그들에게서 얻을 수 있는 기쁨은 다른 형태의 사고와 다른 색깔의 삶의 모습들이다.
그들을 보면서 난 느낀다, "누구도 우월하거나 열등하지 않다, 다만 다를 뿐이다."
매일 매일의 수업에도 불구하고 별로 큰 진전 없이 제자리를 맴도는 나의 영어실력이지만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는 항상 가슴이 뿌듯하다, 무엇 때문일까?
지금까지의 내 삶은 대부분의 물질적인 것들로부터 어떤 성취감을 얻을 수 있었다.
보이는 것과 만질 수 있는 것 그래서 내가 소유할 수 있는 것들-------
그리고 그것들을 당연하다고 느끼고 있었다.
좀더 가치 있는 것들이 우리주변에 많다고 누군가 나를 설득했지만 믿지 않았다,
보이지도 만질 수도 없었기에.....
이제 생각하니 그때 내가 갖고있던 가치관은 세속적인 욕망에 지나지 않았던 것이다.
지금 우리반 젊은이들의 사소한 마음 씀씀이가 나를 감동시키지 않는가?
나는 소위 "소인배" 에 지나지 않았던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 속물근성이 배어나는 이름을 몹시 싫어했다.
내 삶의 방식에 대해 나는 강력히 우겼었다, "이건 엄연한 "현실"이다" 라고.
스스로를 현실에 충실한 생활인이라고 믿는 자부심 또한 항상 내안에 잠재해 있었다.
거기에는 누구도 내 인생에 끼어 들 수 있는 빈틈이 없었는지 모르겠다.
나는 좀더 깊이 있는 인생의 빛나는 보물을 실은 배를 놓치고 있었던 것이었다.
진작 내 가슴 한켠에 다른 사람을 위한 빈 화폭을 마련해 두었더라면,
그래서 여러 사람들이 다양한 색깔로 여러 가지를 그려 넣을 수 있었다면 내 인생이 질적으로 좀더 풍요로워지지 않았을까?
모든 것은 나로 인해 일어난 것이리라, 나는 오직 앞만보고 달려오지 않았던가?
내 곁에는 누구도 편히 쉴 수 있는 아늑한 쉼터가 없었나 보다.
이제는 좀 더 넓은 여백의 깨끗한 캔버스를 준비해야겠다.
그들이 원하는 다양한 색으로 칠한 무지개로 샤워해야지------!
그들이 많은 색깔을 칠하는 동안 나는 그냥 앉아서 행복한 미소를 지으며 가끔 묻는다,
"얼마나 많은 색깔이 당신 주머니에 들어있습니까?"
메리 크리스마스!!! 난 그냥 하얀 도화지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