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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며 생각하며 (71) 바람불어 좋은 날


BY 남상순 2003-04-28

오늘 모처럼 내외가 함께 집에 있게 되었다.
아침일찍 회의가 하나 있어 밖에서 식사를 하고 들어온 남편은
"영화구경이나 갈까?" 제안했다.
"이 좋은 날 시커먼 영화관에서?"
"딱이 보고싶은 영화가 있는것도 아닌데..."

"그럼 아버지 산소에 갈까?"
"오다가 천안 어머니 뵙고?" 척척 죽이 맞았다.

영화관에 갈 생각이었으니까 오랫만의 나드리에다
아버지 산소에 가건만 카메라도 못가지고 나섰다.
햇살을 안고 가면서도 썬그래스도 못쓰고 갔다.

제법 오랫만이라서인지 설레이기까지 한 날이다.
온양시 기산리 마을은 많이 바뀌었다.
알지못하던 길이 동네 안으로 깊숙히 들어와 있었고
더듬어 길을 찾아 느티나무 동산에 올랐다.

아버지 산소엔 쑥이 피어 올랐고 잡초가 자리를 잡고 있었다.
둘이는 내외분 산소의 잡초를 뿌리채 뽑느라 끙끙 그리며
애를 썼다. 그래도 비온지 얼마 안되어 뿌리는 제법 뽑히는데
무성한 잡초가 민망하기까지 했다.

차를 마당에 세웠는데 마당 안쪽에서 말소리가 들렸다.
"지극정성이구먼...!산소에 온 사람들인가벼"

실은 인사 한번 제대로 못나눈 동네분들인데 아버지 어머니
산소를 오를려면 그 집을 통과해 뒷동산으로 올라가야한다. .

시간이 참 빠르다. 점심 시간이 훌떡 지나버렸다.
부지런히 천안까지 달려 집앞에 이르러 식당에서
간단히 식사를 했다. 어머니 젊으실땐 배고프다고 밥달라고
청할테지만 70넘어 혼자 사시는 어머니께 어찌 밥하시라
말씀드릴 수 있으랴. 맛있는 것 사가지고 들어가야지...

잠깐 동안 뵙고 신권 한뭉치 "헌금하실때 쓰세요." 드리며
총총히 다시 달려왔다. 러시를 피해 부지런히 달려오니
하루해가 저물었다. 바람처럼 다녀온 친정나드리
한밤이라도 수다떨며 설치고 돌아와야 하는건데...
"잘가라" 이르시는 어머니 두고 돌아서는 뒤통시가 따겁다

얼마나 외로우시면 창문 열어놓고 3층에서 계속
아랫층에 도착하는 우리를 지켜 보며 기다리고 계셨을까?

어버이 날을 이렇게 때우고 계획을 미쳐 못세웠던 즉흥
친정나드리가 그런대로 기분 좋은 날이다.
딸 여덟을 키워 남의 집에 모두 보내고 홀로 사시는 어머니!
명절날 빼고는 항상 외로우실 어머니.
사람 왔다 가면 오래오래 사라질때까지 서 계시다.
그 옛날 외할아버지께서 동구밖까지 나와서
훠이훠이 팔을 저으시며 오래오래 서 계시던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