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둘러 퇴근을 마치니 온몸이 나른한 게
저녁밥을 한 기운조차 내겐 남아 있지 않는 듯 했다.
집안은 언제나 그랬듯이 온통 아이들이 만들어 놓은 휴지 조각과 과자 부스러기 그리고 장난감들로 범벅이 되어 있었다.
자리에 앉을 새도 없이 나를 둘러싼 피곤이 언제였던가
익숙한 동작으로 청소를 시작한다.
큰 딸아이는 뭐를 잃어버렸는지 엄마를 도와줄 생각도 하지 않고
이곳 저곳 무언가를 찾고 있었다.
무얼 찾느냐는 엄마의 질문에 그제서야 1학기 통지표를
잃어버렸다고 한다.
하나에서 열까지 엄마가 모두 다 챙겨주기 시작하면
스스로 정리하는 습관이 들지 못할까봐
나는 늘 내 인내력의 한계를 시험해 가며 아이들 스스로가
치울때까지 기다리려 하는 엄마이며
자신의 일은 자신이 해야한다고 늘 주장하는 엄마이다.
내 기억으로는 아침등교길에 아빠께 도장을 받는다고 아이가
들고 다닌 것 까지는 기억이 났다.
아마도 아이들 아빠가 보던 신문에 놓아 두었다가 깜박 잊고
그냥 간 후에 버리는 신문지에 딸려 가버렸는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딸아이는 내일까지 학교에 그걸 안 가져 가면 두대를 맞는다고
그 다음날도 안 가져 가면 두대씩 계속 늘어난다고.....
한 걱정을 늘어 놓는다.
1학기 기록부를 아마 2학기까지 연이어서 사용하는 이유에서
학교에서 부모 확인 후 다시 가져오라 하는 가보다.
아이에게 자신의 물건을 평소에 좀 잘 챙기는 습관, 종류별로
나누어서 잘 정리해 두는 습관에 대하여 누누히 일렀건만
역시 초등 2학년의 한계를 여실 없이 드러내고 말았다.
이참에 대청소나 하지 뭐..... 하는 생각으로 간편한 복장을 하고
아이들 방을 모두 비워내어 새로 다 제자리를 잡아 주었다.
정리하는 법을 하나씩 알려줘 가면서 .....
그런데 왠 버려야 하는 물건들은 그리도 많은 건지
엄마의 눈에는 온통 버릴것이 천지였다.
부지런히 정리를 하여 버릴것을 따로 모아두고 있었는데
작은 아이는 엄마를 돕는다 하더니
결국엔 엄마가 버리는 물건이 아까워 자꾸 꺼내놓고 있는
거였다. 내 참 기가 막혀서.....
엄마가 없는 사이 패션쇼라도 한건지 여름 옷들이 일제히
한번씩 벗었다가 그대로 나뒹굴고 있었다.
청소를 하는 내 속은 누굴 닮아 이 모양이지..... 난 아닌 것
같아..... 하면서 마구 툴툴대기 시작했다.
나도 모르게 터져 나오는 한숨을 삼켜가며 두어시간에 걸친 대청소
를 마칠 수 있었다.
그런데 마지막까지 그 잃어버린 통지표는 찾질 못했다.
배고파 죽겠다는 아이들에게 뭔가 따끔하게 자신의 물건을 챙기지
않으면 일어나게 되는 일들을 알게 해 주고 싶어 나는 밥할 시간도
일부러 늦추고 있었다.
그 꼼꼼한 엄마는 이제껏 살면서 한번도 물건을 잃어버린적이
없었건만..... 아이들은 왜 또 이리 정신없이 사는 걸까.....
곁에서 그런 것들을 모두 다 헤아리고 살지 못하는 자신에게
나는 무얼 했나 내 자신에게 많이 화가 났다.
뒤늦은 저녁을 먹고, 피곤해 하며 큰 딸아이는 내일 학교에서의
선생님께 혼날 일을 걱정하며 잠이 들었다.
엄마인 나는 그냥 솔직하게 잃어버린 사실을 말씀드리고 다음부터
라도 잘 챙기겠다고.....죄송하다고 ..... 말씀드리라 했다.
아이는 더욱 더 초초해 하는 것 같았다.
늘 모든것을 엄마가 챙겨주는 환경에서 자란 아이들의 아빠는
아직까지도 내가 옆에 따라다녀야 할 정도로 주변정리를
하지 않고 산다.
부모의 좋은 점만 닮아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마는
둘 중 한 사람의 좋지 않은 점을 어쩌면 그리도 닮아 있을까
나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식구들이 모두 잠든 시간에 홀로 일을 끝내고 자리에 누웠지만
왠일인지 도저히 잠이 오질 않았다.
아이가 선생님께 손바닥 몇 대 맞게 생겼다고.....
그 걱정때문에 잠이 오지 않을 리 없겠지만
아이들을 어떻게 키워야 하는 건가
내겐 많은 고민이 남아 있었다.
하는수 없이 일어나 부스럭 거리며 책상에 앉아
선생님께 편지를 썼다.
안부를 묻는 인사와, 사실 그대로를 솔직히......
그리고 엄마로서 내 자신의 무책임함을 반성하는
그런 편지를 ..... 반성문을 쓰는 아이처럼.....
학교다닐때도 써 보지 않은 반성문을
나는 쓰고 있었다.
아이들은 언제나 자신이 현재 하고 있는 놀이나, 학습에만
열중하고 있을 뿐 주변 정리엔 전혀 신경을 쓰질 않아서
매일 엄마의 잔소리를 밥먹듯이 달고 산다.
그래도 나아지질 않고 있으니 세월가기만 기다려야 하는 건지
아니면 스파르타식으로 옆에서 지켜보면서 정리하는
강행군을 시켜야 할 지
정말 아이들을 어찌 키워야 할지 어렵게만 느껴진다.
나는 문제 하나 덜 풀어도 좋으니
늘 주변은 깔끔하게 해 놓고 살라고
모든 물건은 늘 제자리를 찾아 주라고
외쳐대는 그런 엄마이니
그런 엄마와 이런 아이들이 사는 우리 집의
배는 정녕 어디로 가고 있는 걸까
부디 평온한 항해가 되면 좋으련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