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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대로 들키지 마세요!


BY 김영미 2000-12-22

산타의 선물, 절대로 들키지 마세요!

11월 중순쯤 어떤 아빠가 초등학교 2학년 짜리 아들의 이야기를 물

었다. 아홉 살이나(?) 된 녀석이 갑자기 산타할아버지에게 선물을 부

탁하겠다면서 쪽지에다 편지를 써 놓았단다. 요즘 아이들이 얼마나 똘

똘한데, 9살이나 된 녀석이 산타할아버지를 믿어서 그렇게 썼는지, 아

니면 정말 모르는 것인지 알 수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할 바를 모른

채 아침을 맞이했는데.... 아침에 일어난 아들 녀석은 잽싸게 쪽지 있

는 곳으로 가더니 쪽지가 그대로 있는 것을 보고 굉장히 실망 하더란

다. 그러면서 아이가 산타클로스의 존재를 믿고 있는 것이 진짜냐고

묻는 것이다.


크리스마스가 가까워져서 이런 의구심이 드는 부모들이 많을 것 같

다. 요새 아이들처럼 똑똑하고 약은 애들이 산타할아버지를 정말 믿는

다는 것이 신기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것은 어른의 눈높이로 아이를

보기 때문에 믿지 못하는 것이다. 대부분의 아이는 아직도 여전히 순

수하고 깨끗하다. 아이들이 연예인의 춤을 흉내내고 운동회의 응원가

로 남행 열차를 부른다고 그 애들이 결코 어른이 된 것은 아니다. 어

설프게 어른 흉내를 내고 가수의 노란 머리를 동경하며 연예인에게 열

광한다 해도 그들은 아직도 여전히 어린애이다. 영어를 말하고 책을

척척 읽어내도 아이들의 감성은 지식에 비례하는 것이 아니다. 정작

아이들이 아이라는 사실을 못 믿는 것은 어른들이다.


크리스마스 선물을 들키지 않으려고 여러 해 동안 온갖 노력을

기우렸다. 아이가 크는 만큼 의심도 자라서 산타할아버지를 만나보겠

다고 잠을 안 자며 벼르기도 한다. 유치원에서 처음 산타 행사를 하

던 날, 빨간 산타 복에 수염까지 허옇게 단 유치원 선생님이 아이를

불러서 한 두 마디 할 동안 아이는 마치 석고상처럼 굳었다. 그리

고 "엄마, 그런데 산타할아버지 목소리가 꼭 개나리반 선생님 목소리

하고 똑 같더라!" 하는 것이다. 그때는 아이가 정말 산타를 믿었다는

것이 굉장히 신기 해 보였다. 그리고 아이가 알거나 모르거나 산타의

선물은 들키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을 굳혔다.


몇 년 지나니, 아이는 또 "산타 할아버지의 카드 글씨가 엄마 글씨

하고 비슷하네!"한다. 그러면 그 다음 해에는 왼손으로 카드 글을 쓰

기도 했다.

어떤 해에 산타는 책5권을 크리스마스 선물로 놓고 갔다. 그리고 이듬

해 봄에 책을 정리하다가 "이 책 엄마가 사준 거잖아." 했더니만, 아

이는 정색을 하면서 말한다. "아냐, 엄마! 이거 작년에 산타할아버지

가 선물로 주신 거야!"하는데 속으로 '아차' 싶었다.

막상 공들여서숨겨 놓고 뒤늦게 들통이 날 뻔한 것이었다.

"맞어, 그랬지!" 하면서 넘어갔지만.......

아이는 커서 벌써 몇 년째 산타할아버지를 만나겠다고 거실에서 자겠

단다. 그렇지만 여전히 산타를 직접 만나지 못했고 선물은 간밤에 소

리 없이 내린 눈처럼 항상 그 자리에 놓여 있었다!


어느 해 인가 산타(?)는 롤러 브레이드를 선물하기로 했다. 부피가

커서 끝까지 들키지 말자고 조심하였다. 물건을 구입하고 차에

싣고 다시 꺼내 올 때까지 과정 과정을 세심하게 신경을 썼다. 워낙

박스도 크려니와 두 아이 것을 모두 샀으니 숨길 곳이 마땅치 않았

다. 간신히 벽장 속에 잘 숨겨 두었는데..... 크리스마스가 되기 전

날, 둘째 애가 이것을 보았다. 아이가 "아빠 여기 롤러 브레이드 있

네!" 하는데 남편 왈 "야, 조용히 해!" 그렇게 위압적으로 명령을 했

다는 것이다. 이상하게 여긴 둘째는 자기형에게 말했고, 상황을 조금

이라도 만회해 보려고 나는 잽싸게 안방 장롱으로 선물을 옮겨다 놓았

다. 다행히 큰애 눈에는 직접 발각되지 않아서 시침을 떼었지만 남편

의 실수는 지금까지도 아쉬움이 남는다. 그냥 아무렇지도 않게 "산타

할아버지가 힘드셔서 미리 가져다 놓으셨나?" 하거나, "그래?" 하며

시침을 떼었어도 문제를 해결하기 쉬웠을 것 같았다. 조금 찜찜했지

만 어쨋든 산타로부터 롤러 브레이드를 받았다. 그렇지만 이 사건을

아이는 2-3년 후까지 기억하였다.


중학교에 들어간 큰애는 크리스마스가 다가오니, "저는 산타할아버

지 선물은 됐구요, 대신 엄마 아빠가 뭐하나 사주세요."하면서 능청

을 떤다. 동생을 배려한 멘트였을까? 하여간 그 덕분인지 몰라도 내년

에 중학에 가는 작은애는 크리스마스 트리가 있어야 산타할아버지가

선물 놓고 간다고 트리를 꾸미자고 조른다. 그리고 정작 믿어서 그런

것인지, 알고도 그러는지 모르겠지만, 산타할아버지에게 자신이 갖고

싶은 선물을 쪽지에 써 놓았다.


아이들은 어른이 생각하는 것보다 순수하다. 세상이 바뀌어 아이들

이 무서워지고 어른 뺨친다지만 그래도 여전히 아이들의 순수의 세상

은 굳건하다. 또 아이의 순수한 세상은 의심하면서도 믿을 수밖에 없

는 것인지 모른다. 아이들이 순수의 세상을 잃지 않도록 끝까지 어른

이 포기하지 않으면 좋겠다. 그래서 산타클로스의 선물은 들키지 말라

고 권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