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언제부터 내 주위에 담을 쌓기 시작했는지
= 나도 잘 모르겠습니다
= 아마도
= 담을 쌓기만 하면
= 싫은 사람들로부터
= 벗어날 수 있을거라는
= 생각을 하면서부터
= 시작된 것 같습니다
= 처음에는 담이 그리 높지 않았습니다
= 기껏해야 무릎높이 정도였으니까요.
= 이 담은 아주 멋있어 보였었습니다.
= 그것은 대개가 내 삶 속에서 찾아낸
= 자연석으로 만들어졌었지요.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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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글은 <담>이라는 책에 나오는 내용중에 첫 부분이다
10년전쯤 감명깊게 읽은 책이었지만
지금의 나의 모습으로 이 책을 다시 보니
나의 담은 너무도 두껍고 더러운 <담>임을 깨닫게 된다
나는
조금은 고상하게 살고 싶었다
비록 가진것은 별로 없어도 추접스럽게 살고 싶지는 않았다
미인은 아닐지라도
'이 정도면 괜찮지 않을까?'하면서 스스로를 보고 미소짓기도 했다
사람들 앞에서는
한마디쯤 나도 안다는식의 발언도 하곤 했다
남편의 친구들이
자네가 제일 장가 잘 갔네~라는 소리를 할라치면
'아이 뭘요..'라고 하면서도 은근히 기뻐했다
남에게 피해는 주지 말자며 늘 말하면서도
나에게 피해가 올라치면 '바보 같이 왜 당해?'라고 하면서
손해보지 않으려 했다
난
여자들이 모이면 이런 저런 수다로 흉보기도 하건만
나는 아주 행복한 여자인양 그러한 얘기를 잘 하지 않았다
물론 그동안 남편은 나에게 속 한번 썩이지 않았고
시집식구들은 그냥 그냥 좋았었다
그렇지만
살면서 작고 작은 불만이 왜 없었으련만
난 스스로의 만족감에 취하여
조금씩 조금씩 내 주위에 작은 담을 쌓으며 나의 모습에
도취되어 왔었다
지금껏 살면서
바보라고 경멸하며 얼마나 많은 이들을 비웃었던가
화가 나 다투다가도 금방내 돌아서 헤헤~거리는 사람들을
얼마나 빈정 되었던가
배운것 없다고 멸시하고,
가진것 없다고 천대하고,
온갖 이유를 붙여가며 손가락질하고 판단했으니..
사람들 앞에서의 내 모습은
딱히 나쁘다곤 할 수없지만 그렇다고 정감이 가는 타입은 아닌것이었다
난..
참으로..
천 벌 받아 마땅한 자다
아이가 내 곁을 떠나고서야
내가 얼마나 잘못된 삶을 살아왔는지 알게 되었다.
내가 바보라고 경멸햇던 그들이 얼마나 순수한지를 알게 되었다.
내가 빈정되던 그들이 얼마나 착한지를 알게 되었다.
멸시하고 천대했던 그들이
도리어 나보다 몇 백배나 정직한 사람들임을 알게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난
아직도
순수하지도 착하지도 정직하지도 못하고 있다
아....
언제쯤일까
언제쯤이면 나도 순수할 수있을까
이러한 고통속에서도 착해지지 못하고 있으니.
미우면서, 싫으면서 안그런척 정직하지 못하고 있으니..
내가 지금껏 쌓아놓은 나의 담은
책속의 그 <담>보다도 훨씬 높고 두꺼우니...
그러나
한겹 한겹 시간이 걸릴지라도 부숴뜨리리라
나의 추함이 모두 다 드러날지라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