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이야기로 100회를 쓸까......
여러번 고민을 해 보았지만, 특별한 어떤 이야기 보다는 그저 평소 해왔던 것 처럼 사소한 것을 쓰기로 하였어요.
100회가 이어지기까지는 먼저 여러분의 따뜻한 사랑이 있었음을 잘 알고 있어요.
애정의 마음을 갖고 읽어주신 여러 님들께 먼저 진심으로 감사드려요.....
차츰 밖에서 들려오는 소음들이 잦아드는 시간이네요.
어느새 시원하게 변한 밤바람이 열린 창문으로 들어와 안방을 스치고, 주방을 한 바퀴 돌아 열려있는 아이들 창 밖으로 달아나는 것이 느껴는군요.
그래요..... 또 가을 내음이 나고 있어요.
귀뚜라미가 제 다리와 날개를 비벼대며 한 소절씩 새로운 악보를 연주해 낼 때마다 아파트 곁에 있는 반달은 눈물을 조금씩 흘리고 있네요.
밤이 늦어가고 있는 시간입니다.
지난 주엔 한 자리에서 십년을 지켜온 화분들을 모두 정리하여 가게에 보내야 했어요.
잘 키우면 남편이 출세한다고 해서 더욱 애지중지 신경을 썼던 관음죽, 볼때마다 왠지 영수엄마가 생각나는 잎새가 뾰족한 화분, 진도에서 올라왔다는 밑둥이 굵은 동백 분재, 봄이면 흐드러지게 베란다를 분홍으로 물들인 연산홍, 수년째 해마다 꽃이 활짝 피우던 군자란과 그 새끼 화분, 천국의 향기 같던 문주란, 아름다운 여체가 떠오르던 인삼벤자민, 키가 하루가 다르게 죽죽 자라주던 팔손이.
가게에 보내기 전날 밤늦게까지 누런 잎새를 잘라내고 보기좋게 손질을 했지요. 잘 할 줄 모르지만 이발도 시켜주고 물로 씻어주며 화분 하나하나 마다에 켜켜이 녹아있는 정분들을 정리하느랴 시간가는 줄 몰랐어요.
"그래, 우리집 베란다에서 이렇게 무심한 사람과 함게 생활해 주어서 그동안 정말 고마웠어. 올 12월에 새로 이사 갈 집엔 너희들이
놓일 공간이 없어서 부득이 가게로 먼저 옮기는거야.....
참 고맙구나, 거기서도 잘 자라야 한다."
녀석들은 모두 고개를 푹 숙인 채 내 말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지요.
특히나 기운이 빠져있는 것은 동백과 문주란이었어요.
"괜찮아. 거기서는 할머니가 잘 돌봐주실거야. 너희들도 알잖아."
마치 아이를 안듯이 와락 나무들을 안아주고 싶은 마음이 되었지요.
잎사귀 마다에 손을 대어 부드럽게 쓰다듬어 주었지요.
새촘하게 돌아서 입을 삐죽거리던 연산홍이 먼저 기분을 풀었는지 한꺼번에 많은 그 초록잎새들을 불빛에 반짝였어요.
크기가 조금 작은 화분들은 거실 안쪽으로 들여놓았지요.
이튿날 아침 옮기기 좋도록이요. 밤이 늦어서야 다들 잠이 억지로 든 것 같았습니다.
다음날, 경비아저씨의 도움을 받아 용달차에 화분들을 실었고 십년의 정을 실은 채 그렇게 종로에 있는 가게로 휭하니 떠나버렸어요.
쓸쓸하니 비어버린 베란다엔 지금 몇 개 선인장과 페페, 난 화분이 친구들을 잃은 슬픔에 젖어있네요.
그 화분들이 비어있는 베란다엔 이미 시원해진 밤 공기가 들어차 있어요.
어머님께 혼나고서는 그 화분들 앞에 가 앉아서 소리죽여 울었었지요.
남편이 집 나가 보름씩 들어오지 않고 연락조차 없었을 때 그 나무들이 밤늦도록 베란다 창가에 기대어 하염없이 창 밖을 내다보던 내 곁을 지켜주었지요.
돌쟁이 어린 아들에게 고운 한복을 입혀 그 앞에서 사진을 찍었었고, 오랜만에 친정동생네라고 찾아온 언니도 푸른 잎새들이 보기 좋다고 거기서 창밖을 구경했지요.
처음 우리집을 놀러 온 이웃들이 어떻게 이렇게 싱싱하게 잘 키웠나며첫인사를 건네었고 그렇게 우리집을 알아가기 시작했었어요.
우울하고 상한 마음이 되었을 때 그들 곁에 가서 한숨을 짓고 한바탕 물을 뿌리고 나면 다시 세상을 살아갈 힘도 얻었었지요.
정말 고마운 녀석들이었는데......
지금은 가게 1층에 줄맞춰 서 있으며 가끔 내가 찾아오는 날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겠지요?
영원할 것만 같던 관계들도 살다보면 어느 순간 정리할 때가 오는군요.
그것은 사람 사이에만 있는 일도 아니고, 사물 사이에, 세상과 나 사이에 존재하는 관계들의 변화지요.
그런 관계들이 예정에 의해서 혹은 갑작스런 상황에 의해 언젠가는 어떤 식으로든 변화가 오기 마련이겠지요?
우리가 언젠가는 이 지구상에 존재치 않는 것 처럼 말이죠.
그 변화하는 과정에서 나는 늘 아쉬움을 갖는, 아쉬움을 남기는 사람이었으면 좋겠어요.
완벽하게, 치밀한 계산에 의해 딱딱 맞아떨어지는 명쾌한 결론을 짓는 그런 관계보다는,
미적거리고 허둥지둥 어떻게 대처해야 할 지 갈팡질팡하는 조금 덜 떨어진듯한 사람이었으면 좋겠어요.
빈 베란다 저쪽 너머로 길가에 서 있는 플라타너스가 보여요.
결코 누가 돌봐주지 않는데도 매연이 꽉 찬 이 도시의 거리를 저렇게 꿋꿋이 지키고 있는 플라타너스.
우린 모두 어쩌면 저런 플라타너스인지도 모르겠어요.
모두모두 자기가 있는 곳에서, 누구의 인정을 받기 위함이 아닌,
내 스스로의 삶을 기꺼이 받아들이며 살아가는 플라타너스 말예요.
이른 아침 시간이면 그 플라타너스 잎에도 찬 이슬이 앉았다 가겠지요?
폭우를 피해가는 비둘기도 잠시 쉬어가고, 아주 시원한 바람도 이따금 겨드랑이를 간지르겠지요?
오늘 외출하시걸랑 길 옆에서 서서 잠시 그 나무를 좀 쳐다보세요.
또 가을인가 봐요.
큰 태풍이 온다간다 그런 소리없이 가을이 차분하게 지나가 주면 좋겠네요.
작황이 너무 좋아 쌀값이 좀 떨어진다해도 남아 돌아갈 정도로 넉넉한 여유가 있는 생산이었으면 좋겠구요.
그래서 이번 겨울엔 배고파 추위에 떠는 사람들이 많이 줄면 얼마나 좋을까요?
어깨 통증이 조금 나아진 듯 하긴 하지만 아직 정상으로 돌아오려면 시일이 조금 걸릴려나 봐요.
님들 글에 답변글 자주 올리지 못한 점 너그러이 이해해 주세요.
그동안 아름답게 늙어가는 방법을 사랑해주신 님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이불을 걷어차면 감기 걸리기 좋은 밤이니깐, 오늘 밤은
꼬옥 이불 끌어당겨 잘 덮고 주무세요.
모두 안녕히 주무세요.
(* 새로운 제목으로 인사드리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