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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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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딸기 따라가며...


BY 들꽃편지 2001-08-25

산을 가로질려 놓여 있는 길은
작은 가게 하나 없는 산골마을을
새우깡을 맛보게 하고 아스팔트 신작로 길을 걷게 할 수 있는 유일무일한 통로였다.

돌멩이가 머리를 내밀고,
여차하면 쭐떡 미그러질 것 같은 가파른 산길을
날 달걀 한 알을 손에 쥐고,
산길이 끝나는 곳에 있는 구멍가게에서 학용품과 바꾸었던
옛날 이야기로만 남아 있는 시절.

다른 친구들 보다 학교에서 늦게 끝나 혼자서 고개를 넘을때면
산 중턱쯤에 변함없이 앉아 있는 무덤들을 보지 않기 위해
동요를 부르며 빠른 걸음으로 올라갔던 숨가뿐 두려움.

산을 넘어 내려다 본 마을은 연필로 그려 놓은 듯한 냇물줄기와
멀리 산봉우리를 감싸고 있는 엷은 구름과...
그리고 요즘같이 입맛없는 여름에 젤로 생각나는 것이 있는데...
산길가 풀섶에 너무 먹고싶게 생긴 빠알간 산딸기가 바로 그것이다.

후끈한 한 여름...
햇볕에 익는 것은 산골마을 아이들과 햇볕색깔과 닮은 산딸기가 있다.
여름날의 살갗은 발갛게 익음을 지나 까맣게 타들어 가고
끝내는 기름 바른 종지처럼 번들번들 해진다.
산딸기도 연녹색이였다가 끝끝내는 익을대로 익어 참기름 바른 것처럼 반질거린다.
산언저리마다 잘 익은 산딸기는 알알이 구슬같기도 했다.
손가락에 올려 놓으면 반지 같고 머리에 얹으면 구슬핀 같고 귓볼에 대면 귀걸이였다.

산딸기가 한꺼번에 모여서 밭을 이루면 붉은 꽃밭이였고.
허연 개망초꽃이 흐드러지게 피고,
노란 달맞이꽃이 얼굴을 가린 채 휘청거리며...,
칡꽃이 엉클어진 곳에 산딸기가 여름꽃들과 함께 지천이였다.

두 손으로 따서 배가 부르도록 먹었던 햇볕에 익은 따끈한 딸기.
하교길에 산딸기와 함께 쉬엄쉬엄 쉬었다가 집으로 털털털 들어 가곤 했었다.
늦게 들어 가도 누가 잔소리 할 사람도 없었고,
옛날엔 그랬다 먹고 살기 바빠서 어둡기 전에만 들어 가면 학교 갔다 왔나보다 했다.
요즘처럼 학원가야 하는데 왜 늦었냐고 눈을 치겨 뜨지 않았고,
학교에서 뭐 배웠느냐?숙제는 없냐? 이런 물음표도 없었다.
책가방 던져 놓은 채로 다음날 아침이면 그대로 들고서는 휘적휘적 산을 넘어 학교을 향해 걸었고,
책이 없으면 없는대로 연필 한 자루를 침을 발라가며,
누런 종이에 꾹꾹 눌러가며, 쓰게되면 쓰고 말게되면 말고 그랬었다.
잘하면 칭찬받고 못하면 나머지 공부를 하면 되었으니까.

입안에서 톡톡 터지는 달콤새콤한 산딸기를 실컷 먹고,
배부르면 산딸기가 주렁주렁 달린 가지와 들꽃을 꺾어 꽃다발을 만들었고,
목마르면 쫄쫄 흐르는 옹달샘물을 마셨고,
더우면 세수를 푸드득하면 금방 시원해졌고,
그래도 더우면 한달음에 달려 냇가에 풍덩 빠지면 되었다.

다시 생각해 봐도,
다시 걸어가 봐도,
걱정도 없었고,고생도 몰랐고,불편함이 뭔지도 몰랐던 시절.
어제는 지나갔고 오늘을 살았고 내일은 오겠지 했던 철딱서니 없었던 시절.

동요를 부르며 산언저리에 있던 산딸기를 따라 다녔던 30년전의 이 맘 때.

"고향땅이 여기서 얼마나 되나~~~~
푸른하늘 끝 닿은 저기가 거긴가~~~~
고향에는 지금쯤 산딸기 익어 가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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