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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배에 대한 규정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또한 우리나라도 생겨야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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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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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목을 사수하라!


BY 이화 2001-08-22

우리집 골목에는 세 집이 산다.
골목에 들어서면 첫 번째 집,
이층집인데 주인 아저씨가 이층에서 산다.
노량진 시장에서 경매일을 한다는데
한인상...하는 생김새다.
(차종은 매그너스-한달전에 뽑았다)
취미...끈 런닝 입고 골목에서 차청소 하기.
이때 반드시 카 오디오의 볼륨을 최대로 올리고
뽕짝이란 뽕짝은 다 튼다.
쿵작거리는 노래소리에 무슨 일인가...하고
나갔다가 민망해서 눈길 돌리기 여러번이었다.

일층에는 주인 아저씨와 비슷한 연배의
아저씨가 산다.(처음엔 이분이 주인인줄 알았다)
차는 연하늘색의 소나...타1
주인 아저씨를 제치고 마당에 즐비한
나무의 전지작업과 기타 주인이 해야할
제반 집관리는 전부 이 아저씨가 다 한다.
얼마나 애연가인지 이 사이사이에 니코틴이
줄무늬처럼 까맣게 끼여 있는 걸 본 다음부터는
마주치면 가볍게 목례만 하고 지나친다.
(온몸에서 풍기는 담배냄새 때문에...)

두 번째 집은 새로 지은 사 층 다가구 주택이다.
주인 아저씨는 삼 층에 사는데 아주 조용한 분이다.
어디에 경비서는 일을 한다는데 내가 이사온 이후로
이 아저씨가 퇴근 시간이 평소보다 늦거나
술을 먹는다든가, 그집에서 큰 소리가 난다든가..
하는 일은 결단코 본 적이 없다.
이 아저씨를 보면서 인생이 얼마나 지루할까...하는
생각을 한 적도 있지만 이 아저씨처럼만 살면
세상은 정말 안전하고 아름다운 곳이 될 것이라 확신한다.

그리고 골목의 막다른 이 층집이 우리집인데
일 층에 주인 아줌마가 산다. 그리고 일층 귀퉁이에
중국교포 부부가 살고, 이층인 우리집 옆에도
역시 중국교포 노총각이 살고 있다.
이사를 하고 보니 가장 큰 문제가 주차문제였다.
골목은 바싹 당기면 세대까지 주차가 되는데
우리가 이사를 오면서 골목안의 차가 네대가 되었다.
그래서 차 주인들이 머리를 맞대고 의논 하기를
빵! 빵! 클랙션을 두번 울리면 아뭇소리 없이
차를 빼주기로 약속이 되었는데......

집집마다 출퇴근 시간이 틀리다 보니 어떤 날은
서너 번씩 차를 빼줘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는 것이다.
소나...타 아저씨가 각집의 자동차 키를 하나씩
가지고 있자는 의견도 내놓았지만 차 키를
남에게 내주기가 좀 께름칙 해서 다들 유야무야...
없던 일이 되었다.

집집마다 출근하고 골목이 비면 시시때때로
골목을 내다보면서 연락처가 없는 차를
살짝 대놓고 하루종일 도망가는 얌체 주차족을
내쫓는게 내가 하는 일이다.
한번은 아침 8시부터 밤 8시까지 무려 열 두시간을
연락처 하나 없이 골목 입구에 주차시켜 놓은
차 때문에 애들 데리러 학교에도 못가고
병원에도 못가고...아주 낭패를 본 일이 있다.

매그너스 아저씨가 경찰과 구청에 신고를 하고
경찰 백차가 출동까지 했지만 아무런 조치도 못하고
그냥 가길래 골목 사람들이 눈에 불이 키고 기다려서
결국 얌체 차주인을 잡은 일도 있었다.
차 빼달라고 전화 오면 자기가 일을 못하기 때문에
연락처를 안 남겼다고 이상한 말을 해대던 남자는
매그너스 아저씨한테 맞아 죽을 뻔 했다.

서울 시내 전체에 주차공간이 절대 부족하기 때문에
이런 일이 생기는 것이지만 연락처만 차에 남겨두면
낮에 우리 집 앞에 주차하는 것이 무에 대수랴.
연락처도 없이 주차만 시켜놓고 하루건 이틀이건
나타나지 않는 극소수의 사람 때문에 나도
골목 지킴이가 된 것이니까.

다음 달에 주인 아줌마가 이사 나가면 새로 들어올
신혼부부는 차가 없단다. 남편과 나는 서로 마주보며
가슴을 쓸어내렸다. 세대 주차할 수 있는 골목 용량에
우리가 이사와서 네대가 되는 바람에 눈치가 좀 보였는데
얼마나 다행스런 일인가.

엊저녁 우리 가족은 오랫만에 할인점에 가서 장을 봤다.
어둑어둑한 저녁 여덟시쯤 골목에 들어오니 가장 안쪽에
소나...타가 주차되어 있었다.(이 아저씨 출근시간: 8시 30분)
그 다음에 우리 차 그래도...써(우리 남편 출근시간:7시 30분)
우리차 뒤에 주차를 하는 앞집 아저씨 세피해...(6시 30분 출근)

서로가 사전에 연락한 것도 없었는데
절묘하게 주차가 되었다.
남편과 나는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마주보았다.
"음...오늘은 제대로 주차 했군..."
새벽 6시 20분에 깨어서 차를 빼주는 번거로움 없이
7시까지 잘 수 있다고 남편은 좋아라 했다.

오늘도 나는 썰물 빠져나가 듯이 텅 빈 골목을
수시로 내다보며 골목 사수의 첨병 노릇을 한다.
낯선 차를 주차시키는 운전자에겐
"아저씨! 연락처 남겨 두셨어요"?
온동네가 시끄럽도록 소리도 지른다.
그러면 대부분 연락처를 남겨두었다면서
잠시만 주차하겠노라고 양해를 구한다.

이 집에서 몇달을 살게 될지 모르지만
처음 살아보는 개인주택이 나는 참 좋다.
여기에서 이사를 하게 되면 또 답답한
아파트 생활을 해야 한다.
빚 다 갚고 얼른 돈 모아서 우리애들 소원인
마당집 사야지......
그런데 우리가 돈 모으기 전에 마당집
다 팔려 버리면 어쩌나?


사족: '엄마와 싸우다'에 밑글 달아주신
여러 님들, 감사합니다.
감사의 글을 저도 달고 싶었는데
엄마와의 일을 가감없이 쓴 글이라
글을 쓸 수가 없더라구요.
며칠 동안 마음이 무겁고 우울했거든요.
엄마한테서 빌린 돈을 갚아야 올 추석에
신랑 앞세고 친정에 갈 수 있을거 같은데
대책없이 큰소리만 뻥뻥 쳐놓고......
저 정말 나쁜 딸이죠?
일가친척들이 하는 말이 있어요.
생긴 것도, 성격도 제가 엄마를 빼다 박았다구요.
모전여전...
님들의 따뜻한 마음에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