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주위에는 사람과 함께 살아가는 많은 동식물이 있다. 그 중에서
사람들과 친숙한 것도 있고 그렇지 않은 것도 있다. 이 넓은 세상에
인간만이 뎅그러니 있다면 얼마나 삭막하고 살고 싶지 않을까. 더하거
나 덜한 정도의 차이는 있을망정 우리 인간들은 다른 동식물들과 정
을 나누며 살고 있다.
까치는 사람들의 사랑을 많이 받는 새 중에 하나일 것이다. 까치는
옛날부터 길조로 여겨져 왔다. "아침에 일어나서 까치가 울면 반가운
손님이 온다"는 얘기는 어렸을 적에 많이 듣고 자랐다. 부모님께서도
까치가 울면 "오늘 누가 오려고 저렇게 까치가 울까."라고 말씀하셨
다. 이럴 경우 실제로 손님이 올 경우도 있어 “정말 그렇구나!”하
고 신기해 하기도 했었다.
까치와 비슷한 새로 까마귀가 있다. 온몸이 까매서 검정신사복을 입
은 것 같기도 하다. 그런데 이 까마귀는 우리나라에서는 불길한 새로
통한다. 이 까마귀가 울면 사람이 죽는다는 속설이 있어 사람들이 좋
아하지 않는다. 아마도 까마귀가 동물의 시체를 좋아해서 그런 느낌
을 주는 것 같다. 그런데 서양에서는 까치보다는 까마귀가 더 좋은 새
로 알려져 있다고 하니 결국은 사물 그 자체보다는 사람들의 생각이
호불호를 좌우하는 것 같다. 나는 아직도 아침에 출근할 때 까마귀를
만나면 별로 기분이 좋지 않고 까치를 만나면 기분이 좋아진다.
까치는 인간과 오랫동안 친교를 나누면서 살아와서 많은 얘기가 전한
다. 그 중에서도 가장 극적인 것은 은하수와 견우직녀의 전설이 될 것
이다. 옥황상제의 노여움을 받아서 1년에 단 하루의 만남만을 허락받
은 견우와 직녀가 7월 7석날 눈물의 재회를 하는 것은 너무나 가슴이
아리하다. 은하수로 둘 사이를 갈라놓아 까치들이 이 비운의 커플인
견우와 직녀를 만날 수 있게 돌을 날라서 쌓은 다리가 오작교(烏鵲橋)
라고 한다. 이때 만나서 그동안 못 다한 회포를 풀으니 눈물이 강을
이루어 그날은 밤새도록 비가 내린다고 한다. 남원 광한루에 가면 춘
향과 이도령이 사랑을 나눌 때 건넜다는 오작교가 있다. 그들도 견우
와 직녀처럼 절절한 사랑의 밀어를 나누었을까?
우리 집 앞에는 전주가 하나 있다. 그 전주에는 변압기가 있고, 각 가
정으로 전기를 공급하는 배선이 있다. 그 배선을 고정하는 철재가 전
주에 붙어 있다. 몇 년 전부터 봄만 되면 이 철재에 까치들이 날아와
서 집을 짓기 시작했다. 산에서 나무 가지를 물어다가 계속 쌓는 것이
다. 그러면 며칠 만에 둥그런 둥지가 된다. 새들이 집을 지을 때는 산
란기가 되었다는 징후가 있다. 어떻게 조그만 새가 그 많은 나뭇가지
를 물어다 집을 짓는지 신기할 뿐이다.
그런데 이 전주에 지은 까치집들은 전선에 닿으면 누전과 합선사고의
원인이 되어서 화재가 발생한다고 한다. 그래서 한전에서는 많은 신경
을 쓰고 있었다. 까치집이 중간 쯤 완성되면 어김없이 찾아와서 부숴
버리고 간다. 낮에 와서 부수는지 퇴근하다 보면 전주 아래에 많은 나
무 부스러기가 널려 있다. 기왕 부수려면 뒷마무리까지 잘 하면 좋겠
는데 그들의 머리로는 거기까지 생각이 닿지 않는 것 같다. 아내에게
물으니 “낮에 한전 직원들이 와서 사다리차를 타고 올라가 부수고 간
다.”고 한다. 부수면 다시 짓고 부수면 다시 짓고 미물인 까치의 집
념이 눈물겹다.
까치와 같은 동물은 날짐승이기 때문에 알을 낳고, 그 알을 부화시켜
새끼를 기를 때까지 집이 필요할 것이다. 이 세상에 태어나서 자신의
후손을 남기고 싶은 종족보존의 본능은 인간이나 동물이 같다. 또
자신의 보금자리인 집을 갖고 싶은 마음도 같은 것처럼 보인다. 인간
의 기준에서 해가 되기 때문에 계속 부수고 있지만 까치의 입장에서
생각하면 얼마나 절박하고 절망적일까!
아무리 분양가가 올라가고 집값이 비싸더라도 사랑하는 가족과 평생
을 함께 살 보금자리인 내 집을 갖고 싶은 것은 누구나의 꿈이다. 조
그만 집이라도 그곳에는 사랑과 평화가 있다. 그래서 서양 속담에는
‘아무리 초라해도 세상에 내 집처럼 좋은 곳은 없다(Be it ever so
humble, there is no place like home.)'는 것이 있다. 밖에 나가 하
루를 보내고 저녁에 편안한 내 집에 들어와서 가족들과 함께 지내는
것은 비할 데 없는 행복이다.
지금 이라크전이 거의 막바지에 이른 것 같다. 미영 연합군이 바그다
드에 진입하고 있다는 실황뉴스가 마치 운동경기 중계되듯이 전해지고
있다. 예전에는 전쟁상황은 될 수 있으면 알리지 않고 비밀로 했는데
이제는 실시간 중계가 되고 있으니 이제는 전쟁도 놀이가 된 느낌이
다. 지구의 한 편에서는 생지옥이 되고 있는데 다른 한 편에서는 티브
이를 통해서 구경하고 있으니 이 얼마나 비극인가! 수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고 그들의 보금자리인 집들이 폐허가 되고 있다. 다 부서진
집에서 사랑하는 가족의 주검을 끌어안고 울부짖는 유족의 모습은 가
슴이 아프다. 평범한 서민들이 무슨 죄가 있어 가족을 잃고 생활터전
인 집을 하루아침에 날려버려야 한단 말인가.
바그다드 하면 수천 년 아랍 문명의 유물 유적들이 산재해 있는 인류
문명의 보고이고, 우리를 꿈 속으로 안내하는 '아라비안 나이트, 천일
야화(千日夜話)'의 고향이다. 그런 찬란한 문화유산들이 하루아침에
다 파괴되고 잿더미로 사라지고 있다.
초등학교 때 세계 4대문명을 열심히 외웠었다. 그곳이 어디인지도 모
르고 막연히 외운 것이다. 그 중에 하나가 ‘메소포타미아문명’이었
다. 또 그 문명들은 물이 있는 강의 유역에서 발생했다고 강 이름을
달달 외운 것이다. 그 때 외운 유프라테스강과 티그리스강이 전쟁뉴스
에 나온다. 내가 평화롭게 공부했던 사실들이 전쟁뉴스를 통해서 들려
오고, 확인이 되니 얼마나 아이러니인가. 여행을 통해서 위대한 인류
문명의 유산들을 눈으로 보고, 가슴으로 느끼면서 내가 배운 사실을
확인하고, 즐거워 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오늘도 퇴근하다 보니 집 앞에는 낮에 부수어버린 까치집의 잔해가 널
려있고, 티브이를 켜니 폭탄공격으로 성냥갑처럼 부서진 바그다드의
집들이 눈에 들어온다. 아, 모든 생명체들이 좀더 평화롭게 살 수는
없는가?
오, 신이시여 살아있는 모든 생명들을 보살펴주시고 이 땅에 평화를
주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