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버작가

이슈토론
이혼 소송을 하고 있는 중 배우자의 동의 없이 시험관 시술로 아이를 임신하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배너_03
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조회 : 177

닭호스 아줌마의 신문읽기 86 - [TV IN&OUT]소박한 감동 - TV동화 행복한 세상


BY 닭호스 2001-08-22





TV는 시끄럽다.


늘 현란한 색깔과 요란스런 목소리, 눈이 휙휙 돌아가는 스피드로 우리를 즐겁게도, 괴롭게도 한다. 하긴 이젠 웬만한 요란뻑적지근함엔 면역이 되서 아무리 오버를 해도 심드렁하다. “거 참…되게도 떠들어 대네…” 한마디 하곤 채널을 이리저리 옮겨버린다.




하긴 시끄러운 게 어디 TV 뿐이랴. 당장 집 밖에만 나가봐도 무슨 성질나는 일이 그렇게나 많은지 빵빵거리는 자동차 클랙션 소리, “무조건 우리 집에 들어와!”라는 듯 가게마다 틀어대는 댄스가요 소리, 바쁜 현대인의 필수품 핸드폰 울려대는 소리에 잠시도 ‘조용하고 그윽한’ 시간을 갖기가 힘들다. 이젠 너무 조용해도 조금은 겁이 나는데. 이거 ‘시끌벅적 중독증’아닌가?




그런데 얼마 전 왁자지껄한 TV프로그램들 속에서 조용한 휴식처를 찾았다. ‘TV동화 행복한 세상’. 처음엔 “뭐 저런 썰렁한 프로그램이 있어? 다 늦게 웬 공익 방송이야?”했다.


‘TV동화 행복한 세상’은 교훈적인데다가(TV와 교훈이라니 너무 안 어울리는 조합이다) 꽤나 밋밋하고 심심한 프로그램이기 때문이다.




동화 속 그림은 파스텔 톤으로 은은하다. 그 그림들은 무슨 배짱인지 참 천천히도 움직인다. (요즘의 스펙타클한 애니메이션을 생각하면 절대 적응 못한다) 이금희 아나운서의 나레이션은 차분하고 고상하다(완전 슬로우…자극적인 멘트는 전혀 없다). 책으로 읽었다면 “우~ 뻔한 스토리…감동을 강요하는 얘긴 질색이야!”하고 생각했을 이야기들인데 TV동화로 보면 웬지 마음이 푸근해진다. (아마도 시청각의 효과일 듯…)




TV 프로그램은 일단 재미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면 ‘TV동화 행복한 세상’은 미달일지도 모르겠다. 거기엔 순간순간 재치있게 날려주는 애드립도, 감정을 극으로 치닫게 하는 드라마틱한 상황설정도, 얼굴만 봐도 “꺅!” 할 도도한 스타님도 없다. 담담하고 소소한 이야기가 있을 뿐이다. 그렇지만 그 이야기들은 우리 주변에서도 만날 수 있는 얘기들이다. 평생을 살아봐야 한번 만날까 말까 한 완벽한 남자와 사랑에 죽고 사랑에 사는 여자가 나오는 드라마 속 이야기들과는 본질적으로 다르다. 조금 싱겁지만 여운이 있는 이야기들이다.




재미없는 방송엔 냉정하게 채널을 돌려버리고, 황당한 스토리에 흥분하는 자극적인 시청자지만‘TV동화 행복한 세상’이 좋다. 조금은 느리고, 조금은 뻔하지만 콩알만큼 남아있는 감성을 건드려주는 프로그램. ‘TV동화’를 보면서 난 “나, 아직 감동받을 수 있어…”하고 다행스러워 한다.




동화를 잃어버린 사람들을 위해서 매일 소박한 동화까지 들려주는 오지랍도 넓은 TV. 어쩌면 TV는‘바보상자’라는 별명을 좀 억울해 할지도 모르겠다.

----------------------------------------------------------------

언젠가...
아침 나절 티부이를 보다가..
재방송이라는 꼬리를 달고.. 방영되는 티부이 동화 프로를 보았다..

그림이 너무 이뻐서이기도 했고...
갓난쟁이 딸 아이를 키우면서..
만화라면 눈이 번쩍 띄이는 탓이기도 하였다...

그래서 나도...
엄마에게서 들은 한편의 동화같은 아름다운 이야기를 여기에 풀어 놓으려 한다...

-----------------------

엄마가 처녀시절...재직중이었던 한 여고에서 일어난 일이다...
엄마가 담임으로 있던 반에는 간질병을 앓고 있는 나영이라는 한 여학생이 있었다고 한다..

그 소녀가 처음으로 발작을 일으키던 날..
그 소녀의 짝꿍의 엄마가 방과후 엄마를 찾아왔다...

"선생님...저희 애 짝꿍을 좀 바꿔주셔야겠습니다.."

그 학부형은 단호했다...

학부형을 돌려보내고 엄마는 고심하였다..
그리고 다음날..발작을 일으킨 소녀는 학교에 오지 않았다..

엄마는 아이들이 다 모인 조례시간에 이렇게 말했다..

"나영이는 아프다.. 누구든지.. 나영이의 짝이 되어 일년간 나영이를 돌보아줄 자신이 있는 사람은 2교시가 마칠때까지 교무실로 나를 찾아와다오.."

엄마는 이렇게 말하고 반을 나섰다...

그리고... 2교시 종이 울리고.. 쉬는 시간이 되자..
교무실 문이 열리고.. 키가 큰 한 여학생이 들어섰다..

그 아이는 학교 농구부 대표선수인 수민이었다...

수민이가 엄마를 보고 활짝 웃었다...

"선생님.. 제가 나영이 짝이 되겠어요.."

그 후.. 일년간 수민이는 나영이의 짝이 되어.. 나영이를 잘 도와주었다고 한다...


엄마는 이 이야기를 하며.. 그 아이가 참으로 고마웠었다고.. 말했다.

남한테.. 참 고마운 일...
그런 일을 해본지가 참 오래되었다는 생각이 든다...

어렸을 때..
학교에는 스마일표라는 것이 있었더랬다..
착한 일을 한 아이들에게 선생님이 한장씩.. 때론 열장씩도 주시곤 하셨던 것인데..

그 스마일표를 서른개 모으면.. 노란색 명찰을...
그리고 50개를 모으면.. 빨간색..
그리고 70개를 모으면 초록색을..
그리고 백개를 모으면 전교생 앞에서 표창을 주던 그런 바보같은 제도가 있었다..

일부 선생님들은 그걸 이용해...
아이들의 자유와 창의성을 유린하고 짓밟았다는 생각이 든다..
아이들은 더 많은 스마일표를 획득하기 위해 점차 획일적이고.. 선생님들의 기분이나 맞추는 불쌍한 존재로 전락하고 말았으니 말이다...


어렸을 때의 그 감정...
잊지않고 고스란히 기억할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러면.. 훨씬.. 여유로운 어른이 될 수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