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어릴적에(4)-아들이 뭔지...
우리집은 딸부자다.
딸 여섯에 막내가 아들이다.
난 그중의 둘째딸이다.
우리 아버진 장남이시다.
엄마는 우리들을 다 집에서 낳으시고
막내인 남동생만 외가집에 가서 낳으셨다.
동생들이 태어날때면
할머니는 세숫대야를 들고 안방으로
부엌으로 바쁘게 왔다갔다 하신다.
애기 울음소리가 나고,
숨죽여 기다렸다가 할머니에게
"할머니 뭐야?" 하고 여쭤보면
할머닌 퉁명스런 목소리로
"너희들하고 똑같은거..."
하고 더 이상 대꾸를 안하신다.
마당에선 아버지가 임줄을 만드신다.
"아빠! 또 딸낳아서 섭섭해?"
하고 어린 마음에도 아버지의 마음을
헤아린듯 여쭤보면
아버진 전혀 섭섭한 내색도 없으시고
"섭섭하긴... 아빤 딸이 더 좋아..."
하신다.
지금 생각해 보면 조금 쓸쓸한 표정이셨던것
같기도 하다.
작은 엄만 첫딸을 낳고는 아들만 내리
낳으셨는데,
반대로 딸만 내리 낳은 엄마의 심정은
어떠하셨을까?
한해터울로 우리 엄마랑 작은엄마랑
아이들을 낳았다.
엄만 딸, 작은 엄만 아들, 또 우리 엄만 딸,
또 작은엄만 아들...
알게 모르게 엄만 자존심도 많이 상하셨을테고
보이지 않게 할머니한테 구박도 받으셨나보다.
어려선 전혀 할머니가 엄마를 구박하시는것을
본 기억이 없는것 같은데 말이다.
커서 엄마에게 들으니 애기 낳고
3일도 안돼서 엄마가 개울에 나가 찬물에
빨래도 하시고 밥도 해 드시고 하셨다고 한다.
그것이 무언중에 구박이 아니고 뭐랴...
막내 태어니기 전에 동네에 업동이가 한명
들어왔었다.
물론 사내아이였다.
동네 어른들은 그 아이를 우리 집으로 데려오셨다.
아버지께선 엄마 눈치를 살피시며
"여보, 이 아이 우리가 키울까?"
하고 물으니,
엄마는 " 시끄러워요. 당장 데리고 나가요..."
싸늘한 기운에 어른들은 그 아일 데리고 얼른 나갔고,
그 아인 이장집에 맡겨졌다가 파출소로 보내졌다.
엄만 많이 상처를 받으셨으리라.
그 뒤 엄마가 다시 임신을 하시고
마음 고생이 크셔서 그런지 배도 별로
부르지 않았고, 음식도 제대로 드시지 않았던것 같다.
그러다가 애기 낳을때쯤에서 외가댁에 가셨다.
전화가 없던 시절이라 외숙모가 소식을 전하러 오셨었는데
할아버지께 "축하드립니다. 아들손주 보셨어요"
하시니까 우리 할아버진 믿기지 않는다는듯
"괜찮아요. 아들 아니면 어때요... 난 괜찮아요..."
하고 쓸쓸하게 말씀하신다.
외숙모께서 재차 아들손주 보셨다고 말씀하시니까
그 때서야 우신다.
강하게만 보였던 우리 할어버지께서 우신다.
우리도 함께 껴안고 울었다.
뭔지도 모르고 울었던것 같다.
아니면 어린 마음에도 이제 엄마의 고생이 끝났지 싶어서
울었던건지...
우리집에 아들 낳았다는 소식은 온 동네에 경사였다.
동네 사람들이 다들 내일 같이 기뻐해주셨다.
한참만에야 엄마가 애기를 데리고 집으로 오셨다.
커서 들은 얘기지만
엄마는 그 애마저 딸이었으면
어디 입양이라도 시키고 오려고 집밖에 나가서
낳으신거라고 하셨다.
그렇게 엄마가 갖은 고생하며 기어코 얻은 아들이
지금은 어느새 군대도 갖다오고, 직장생활하는
어엿한 청년이 되었다.
어렸을 땐 "언니, 언니.." 하던 그 동생이
언제부터인지 우리들을 부르는 호칭이
자연스럽게 누나로 바뀌었다.
난 딸만 둘이다.
남편이 수술을 해서 더 이상 애길 낳을 순 없지만
그 전엔 친정에 가면 엄마는 날 조용히
부엌으로 이끌어 뭔가 말씀을 하시려고 하셨다.
"아들을 낳으려면 말이지..."
난 정말 듣기 싫었다.
아들을 낳은 뒤에야만 당당해 질 수 있는건지
모르지만 난 순리대로 살기로 했다.
둘째딸을 낳고는 남편이 좀 기운없어 보이는듯 했지만
난 전혀 모르는체 했고,
섭섭함은 아주 잠깐뿐이었다.
지금은 두 딸 때문에 얼마나 행복한지 모른다.
이 행복이 아들이 주는거라고 더 하겠는가.
자식은 다 똑같은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