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하나밖에 없는 아이가 고등학교에 입학하였다. 아이를 키우는 일은 세상 어느 일보다 힘든 것이겠지만 우리 나라에서 학부모가 된다는 것은 숨막히는 긴장 속으로 들어가는 것을 의미한다. 아이들이 느끼는 것보다 더 한 경쟁과 불안과 초조를 겪어야 한다. 초등학교 때는 그런 것이 싫어서 내버려 두었다가 중학교에서 뜻하지 않은 사건을 겪고 아이와 동행하는 생활로 들어갔다.
그 다음부터 나의 신경은 아이에게로 집중 되었고 나의 생활은 아이를 중심으로 꾸려져야 했다. 힘들고 짜증나는 생활이지만 그래도 내 마음대로 살아갈 수 있는 날이 올 것이라는 기대 속에서 이 지리한 날들을 견뎌낸다. 아이가 대학에 합격하면 나는 훨훨 자유를 찾아 날아가리라는 즐거운 꿈을 꾸며 살아간다. 물론 자식은 영원히 애물단지라지만 그래도 아이가 대학만 들어가면 나는 예전의 나로 돌아갈 수 있으리라.
고등학교 배정을 받고부터 더 긴장이 되었다. 중학교까지는 연습 게임이었지만 고등학교는 실전이다,를 아이와 함께 외치며 시행착오를 인정하지 않는 가혹한 우리 나라의 입시 제도를 원망도 하며 불안한 시간을 보냈다.과연 우리 아이가 고등학교에 가서 잘 적응할 수 있을까. 아이가 입학하는 전 날엔 잠을 이루기가 쉽지 않았다. 그리고 다음 날엔 매 시간마다 눈이 떠지는 것이었다. 중학교 때까지는 8시 30분까지 등교하던 학교를 7시 30분까지 가게 되었으니 엄마인 내가 일찍 일어나서 밥을 먹여 학교에 보낼 자신이 없어서였다. 나 때문에 아이가 지각을 하는 악몽을 꾸며 새벽에 일어나 밥상을 차릴 때는 현기증과 오한이 일었다. 아침에 한 시간 더 일찍 일어나야 하는 일로 해서 나의 생활 리듬은 완전히 깨어지고 나는 헉헉대며 비명을 지르며 한 주일을 보냈다. 토요일과 일요일엔 완전 기진맥진 탈진상태까지 가게 되었다.
저녁에 퇴근을 하자마자 자리를 펴고 우울한 기분으로 누워있는데 9시까지 야간 자율학습을 한다던 아이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엄마, 지금 엄마 핸드폰 켜봐. 아이의 목소리를 들으면 언제나 기운이 났다. 꺼두었던 핸드폰을 켰더니 문자가 왔다. 엄마 나 반장 되었어. 맛있는 거 해 줘. 피곤이 저만큼 멀리 달아나는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