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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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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처일기2] "반성문 써 가지고 들어와요!"


BY 윤 2000-12-13

덜컹 덜컹~
창 틈새로 들이치는 바람이 너무 매섭다.

스산하게 불어대는 겨울 바람 사이를 비집고 출근하던 우리 낭군..
아마도.. 오늘 아침 바람은 어느때 보다 더 을씨년스러웠으리..

"반성문 써 가지고 집에 들어와요!"
마누라의 불호령에 '피식' 웃고는 나갔지만
지금쯤.. 슬그머니 걱정이 될텐데..

아니지..
이 무심한 아찌가.. 마누라 속상한 걸 와장창 잊어 버리고
룰루랄라~ 회사에서 즐거웁게 지내고 있을지도 모르겠네.
으이구..

달랑 달랑~ 한장 남은 달력이 무심하게 흔들거리는 이 연말.
모두들.. 특히 남자들이.. 세월의 흐름에 한숨 지으며
송년회를 핑계 삼아 술자리를 전전긍긍하고 있는 것은
십분 이해한다.

하지만..
우리 낭군은 이 무던한 마누라가 도저히 참을 수 없는 일을 저질렀다.

무슨 일??
며칠 계속 얼큰이가 되어 귀가 하더니..
어제도 역시나 "한잔 하고 갈께"라는 기별을 하는 것이 아닌가.
여기까진 성격 좋은 내가 백번 참을 수도 있는 일.
그런데..
이 아찌가 새벽 1시 2시... 연락이 없더니
날이 어슴프레 밝아올 때까지 감감 무소식.

윽.. 외박이다.
절대 절대 용서 할 수 없다.
두고보자..

6시가 넘어서야 '띵동~'.
어구구구.. 냄새..
문을 열어보니 초췌한 얼큰 아찌가 술 냄새 폴폴 날리며 서 있었다.
이 남자를.. 마구 마구 고문을 해버려??
왕 잔소리 하려고 시작하다가 그만둬 버렸다.
나도 피곤하니 일단 잠 좀 자고..

7시 30분.. 줄기차게 울어대는 알람 소리에 겨우 몸을 일으켜
널브러진 낭군을 마구 두들겨 댔다.
와~ '천하무적 태권 브이'일쎄..
우리 낭군 .. 그래도 씩씩하게 출근 준비 하는 걸 보니 참 신기했다.
그것도 요리조리 뒤를 쫓으며 툴툴대는 마누라를
살살살 잘도 피하면서..

회사 동료 집에서 술 마셨다고 외박이 용서 댈리는 천부당 만부당!
"반성문 써 가지고 집에 들어와요. 아니면 집에 들어 오지마아!"
현관문을 열고 나서는 낭군 뒤에 대고 최대한 싸늘하게 쏘아 부쳤다.
"으응~"

'으응' 대답인지, '끄응' 비명인지
한마디 하곤 겨울 바람을 헤치고 나가던 우리 낭군.
낮에 전화 와서 하는 말..

"어제 내 몇 시에 들어왔노?"
-"언제 어제 들어 왔어요? 오늘 들어 왔지. 6시 좀 넘어서.."
"와~ 진짜가. 그러고도 내가 지금 근무 하고 있단 말이가.
갑자기 피곤하네. 으~ 죽겠다."

웃겨..
좋아서 술 마시고서는..
두고봐야지.. 도대체 어떤 반성문을 써 오는지..

세상의 모든 낭군들이여..
제발 술 좀 작작 마십시다!!
'주고받는 술잔 따라.. 늘어가는 아내의 한숨..'
느껴지지 않으시나이까..

에고고.. 웬수지, 웬수야..
술이 웬수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