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의 음력 2월은 영등달이다.
영등신은 강남천자국에서 제주도로 산구경 물구경하러 와서,
음력 2월 1일에서 14박 15일을 머무는 봄바람의 신이다.
제주도 곳곳을 돌아다니며, 땅과 바다에 씨를 뿌려주는데,
영등대왕이 씨를 뿌리기 전에 밭을 경작하거나 고기를 잡으면
흉년이 든다고 한다.
그래서, 선조들은 영등달에는 일년 밭농사, 바다 농사의 풍요와 안전을 기원하는 굿을 벌이고, 영등신이 제주도를 떠나 완전한 봄이
오는 15일까지 축제를 벌이고 놀았다.
이제, 그런 건 옛날 이야기이고,
'영등환영제'와, '영등 송별제' 굿판은 벌어져도 두 손 모아 비는
간절함은 없다.
그러나,믿거나 말거나
내 짧은 살이 경력에 비추어봐도 영등달에 들어서면 어김 없이
비가 내리고, 파도는 험해진다.
오늘은 음력 2월 5일, 바람은 거세고, '우장 쓴 영등신'이 왔는지
비도 내리고 있다.
남편이 내 허술한 옷차림을 보고 아직은 봄이 아니라며,
며칠 전 따뜻해진 날씨를 보고, 봄이 왔나하여 두툼한 옷들을
정리해버린 내 성급함에 대해 비난한다.
간절히 기다리던 봄,
잘 보관해 둔 씨앗을 성급히 뿌려 뒤늦게 온 꽃샘 추위에
얼어버릴까 좀 더 기다리라고 영등신을 빌어 경계했던가.
덜 자란 미역을 따 버릴까 더 기다려야 풍성히 거둘 수 있다고
내 조급함을 비난하는 남편처럼
자연은 그렇게 가르쳐 온 것이리라.
살짝 봄의 얼굴만 보여주고는
달리기에 앞서 신발끈을 동여 매듯
일년 농사를 신중히 준비하라고
일년 내 바빠질테니 힘을 모아 준비해 두라고
커다란 신의 손길이 온 섬을 쓰다듬고 있다.
세상은 늘 남보다 앞서서 준비하라하고
쇼윈도우엔 이미 겨울부터 봄 옷이 진열 되지만
자연은 봄볕이 따스하게 내려 앉을 때까지 서두르지 말라한다.
영등신보다 앞서 씨뿌리지 말라한다.
자연을 앞지르려는 인간에게
'감히 !'하는 영등신의 호통 소리가
바다를 뒤집고,
성급히 갈아 놓은 땅을 얼리고 있다.
날씨에 대한 짜증이 간절한 기도가 되고,
기도가 둥그렇게 모아져 보름달로 떠올 때,
영등신은 겸허해진 인간들에게 풍요로움을 두고
빙긋 웃으며 떠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