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수수가 아이들 키만큼 자라 있었다. 마른 가뭄과 많은 비가 내려 결코 쉽지 아니하였을
벼가 아주 많이 자라 있었다.
그리고 ... 내 어머니도 그 만큼 늙어(?)버리셨다.
그랬다. 시댁에 모심기 위해 오월에 가고, 뭐가 그리 분주했던지 삼 개월 만에 다니러 가보니 내 어머님 놀라울 정도로 늙고 계셨다.
봄에도 그렇게 보이지 않았는데, 노인의 늙어감은 하루가 다르다더니 내 어머님의 쇠잔함은
남편과 나를 정말 우울하게 했다.
커튼을 떼어 빨고... 속옷들을 하얗게 삶아 내면서 나의 불효을 한탄했다...
난 내 부모 같을 수 없을게다. 그럴 수 없을 게다. 거저 주기만을 반복하시는...
사랑의 한계가 없는... 그런 사랑을 내 아이들에게 나는 할 수 없을거라는...
\"우리가 나이가 적냐? 늙는 게 당연하고 기운 없는 게 당연하지...
그동안 하나님의 은혜로 이만큼 건강한 거야.
그러나 네 아버지 봐라 날로 건강해 지시는 거....
요즘 젊은 사람들 죽어가는 거 봐라.... 우리도 빨리 하늘나라에 가야 할 텐데... 너희에게 짐이 되기 전에...\"
당신의 마지막을 의탁해야 할 너무나 당연함도 그분들은 \"짐\" 이라 표현하셨다...
녹두를 땄다....
그 열매가 얼마나 작은지...
그건 어머님이 청포묵을 좋아하는
자녀들에게 가루를 만들어 내기 위한 농사다.
고추를 땄다...
농약을 치지 않아 많은 병치레를 하고 있는 그래서 더 많은 잡초가 생겨나 다른 밭보다 더많은 수고를 요구하는 그 밭에서... 자녀들에게 무농약 무색소의 고cnt가루를 주시기 위함이다.
논을 돌아보았다...
오리가 논 속에서 자라나고 있다. 오리농법이 작년부터 시행되고 있는 것은 농약을 쓰지 않겠다는 약속이다. 좀 더 높은 가격으로 수매할 수 있어 좋고, 자녀들에게 농약치지 않는 쌀을 줄수 있어 좋다 하시지만 아침저녁으로 오리 밥을 주어야 하는 거워운 수고가 기다리고 있다.
이렇게 일 년에 서너 번 만 내려와서 당신들이 지어놓으시는 농사를 손자들과
한번 돌아봐 주는 것만도 너무 너무 행복해하시는 부모님들...
남편과 나는 형님댁과 상의하겠지만 밭 농사는 올해로 그만 하시라고 말씀드렸다.
그곳에서 양념은 돈을 주고 사서 먹을것이고... 밭에서 생겨졌던 소득은 매달 꼬박꼬박
붙쳐드리겠노라고....
\"진짜 우리 땅에서 나는 우리 농삿물을 너희에게 주는것은 매달 영양제를 주는 마음이었는데 그걸 하지 말라구? 너희가 모두 얼마나 건강하냐? 그걸 이제 그만두라구?... 걱정마라...
하는데 까지는 할거니까... 이 동네 농사도 믿을 수 없어 파는 것과 자기가 먹는 것을 구별하는 집도 많으니까...\"
남편과 나는 고개를 떨구었다...
삼일을 있으면서 선풍기를 닦고, 창틀과 천장을 닦아내고 형광등 전구를 갈아 끼우던 남편을
난 말없이 바라보았다.
\"어머님도 이젠 곧 팔십이 되세요...\"
\"형들 복잡하게 아무 말마라....\"
남편의 묶은 책상에서 김민기 테잎을 발견하여 가져나온 나는 차 안에서 오래도록 잘 견디어 내 준 그테잎의 성향에 놀라워하며 남편이 즐겨 부르던 아침 이슬과 친구를 들었다.
내 남편.... 차가 밀려 서너 시간을 운전하면서도 테잎을 뺄생각도... 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내가 왜 모을까?....
그런 사랑도 있구나...
영양제을 매달 주기 위해 농사를 지었다는 그런 사랑도....
정말 서울에서의 새로운 노후가 부모님께서는 어려운걸까?....
그리고 진심으로 난 그걸 바라고나 있는 걸까?
나랑 함께 살고 싶다 하면 어쩌나 그런 생각을 사실은 얼마나 많이 했는데....
비가 많이 내렸다. 팔당댐을 옆에 두고 돌아오는 길에 난 내 부끄러움에 어둠에 잠긴 긴 한강을 말없이 바라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