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아이들과 함께 동네 체육관에 배드민턴치러 가곤 했다.
저녁을 먹고 난후,아홉시부터 문 닫는 시간까지 한시간을 뛰고 나면,
축축하게 땀이 흐르고, 땀과 함께 좋지 않은 감정의 찌꺼기까지
흘러 나온듯, 몸과 마음이 가벼웠다.
그러나, 짝꿍이 필요한 배드민턴은 다른 운동보다 꾸준히 다니기가 어려웠다.
번갈아가며, 나나 옆집 언니에게 일이 생겨서 근 일주일을 걸렀더니,
아이들이 난리다.
넓은 체육관 바닥에서 뛰고 구르던 녀석들이, 좁은 방에서만 놀자니
몸이 근질거리는지 자꾸 체육관 가자고 조른다.
마침, 걸리는 상황도 없건만
꽤 먼거리라 차를 타고 가야하는데, 오늘은 차가 나가고 없다.
사정을 설명하니, 실망하는 다섯 아이들.
차는 없고, 밖엔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대신에 탐험가자." 탐험이라는 말에 솔깃한 아이들, 탐험장비를 갖추기 시작했다.
우산, 우비, 장화, 랜턴....
잘 무장하고 길을 비추며, 꼬마 탐험가들은 낮에 발견한
비밀 통로를 보여준다며, 둘씩 짝지어 앞장을 섰다.
우산을 들고 따라 오는 나를 보고,
"엄마, 뚱뚱해서 걸릴것 같은데...."한다.
아이들이 발견한 비밀 통로는 건물과 건물 사이 틈이었다.
조심하라고 당부하는 내게 꼬마녀석 또 일침을 가한다.
"엄마 겁쟁이다."
탐험가들은 씩씩하게, 겁쟁이 엄마는 조심조심, 다 빠져 나와 넓고 평평한 곳에 나오자 안심이 된다. 휴~
방어 축제장으로 썼던 매립지를 지나, 탐험의 고지 빨간 등대가
보인다.
랜턴을 가지고, 바다도 비춰보고,발 밑을 기어가는 바다바퀴벌레(갯강구)를 보고 밟지 않으려 조심한다.
까만 바다 위에 조용히 앉아 쉬던 갈매기떼가 아이들 소란에
우- 날아 오른다.
"엄마 등대 위에서 웅변해야지."
"응, 해야지. 오늘은 새학년 새다짐을 하고 가야지."
등대 위는 무대다. 올 때마다 다짐을 하고 가는 곳이다.
아이들이 번갈아 올라가 어둠 속에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다짐을 한다.
"4학년이 되면, 내 생각을 더 잘 발표하고 공부도
열심히 하겠습니다." 현제와 혜은이 언니 다음에 외치는
수줍음 많은 큰 딸이 뱃 속에 힘주고 있을 것이다.
여섯살 꼬마 "나는 바닷가에 놀러 가겠습니다."
유치원에 가는 일곱살 둘째 "씩씩하게 유치원에 다니겠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나의 다짐,
"서른 네살에는 더욱 좋은 엄마가 되겠습니다."
아이들의 목소리가 비 내리는 밤 하늘 위로 ,
거세지는 바다 위로 퍼져 나간다.
빗발이 거세지고 있다. 서둘러야 겠다.
돌아가는 길, 아이들은 올 때보다 능숙하게 어두운 빗길을 걷고
있다.
쌓아진 돌을 건너는데, 뒤돌아서 현제가 일곱살짜리 동생을
안아 건넨다.
다 컷구나하는 생각과 함께
이웃에서 이렇게 같이 키워진 아이들, 서로 의지하며
살아가겠구나하는 생각에
덤으로 아들 하나 얻은 것 같아 든든하다.
수협 앞을 지나는 데, 어둠 속에서 걸어오는 한떼의 우산 행렬을
수협직원 동그래진 눈으로 보고 있다.
밤 빗속을 탐험하고 돌아 오니,
세상이 다 낮아지고 작아진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