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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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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꽃 내 어머니.....


BY 가을내음 2000-09-16


간밤에 비가 내렸습니다.
저는 어머니가 계시는 충청남도 도고온천 으로 어머니를 뵙기 위해 이른 새벽 차를 몹니다.

마을 어귀에 들어서는 순간 더 어머님에게로 가까이 와 있음에도
불구하고 왜 그리 왈칵 그리움이 더 달겨드는지 모릅니다.
어릴때 비가 내린 봄날 아침이면 감나무 밑에서 어머니는 감꽃을
실에 꿰어와 저의 목에 걸어 주곤 하셨습니다.
노란 감꽃 목걸이는 그날 '남자 아이가 목걸이를 했다'며 놀리는
그 많은 친구들의 비난에도 불구하고 하루종일 저의 목에 걸려
있었습니다.
감꽃 내 어머니.....

저녁때가 되면 이제는 부서져 버린 감꽃 목걸이를 내버려 둔채
잠이 들어야 했지만 어머니는 '내일 또 해주마'하시며
토닥 토닥 저의 등을 두드려 잠을 재워 주셨습니다.

그렇게 담뿍 어머니의 따듯한 관심과 배려속에서 뒹굴던 유년시절 속에는 저는 심장판막증이라는 아주 무서운 병을 갖게 되었습니다.
목감기를 방치하여 다리 류마치스로 갔다가 치료가 늦어 심장에
까지 타격을 준것 이었습니다.

그러다가 91년의 겨울 저는 신촌 세브란스병원에서 판막 이식수술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때 어머니는 얼마나 우셨는지 모릅니다.
다 당신의 무지 때문에 일어났던 일이었다고.
당신이 병을 방치해서 그런거라고.
퇴원을 하여 집으로 왔을때 부터 당신의 정성은 정말 눈물겨웠습니다.

장항선 열차를 타시고 수술후의 염증에는 보신탕이 좋다는 말을 들으시고 한마리를 통째 가지고 올라오셨습니다.
그 무거운 것을....
그리고 아내가 절대 할수 없다는 그 보신탕을 당신 스스로 팔을
걷어 부치고 해 주셨는데 그 덕분인지 저는 금방 기운을
차릴 수가 있었습니다.

저의 어머니는 아주 작으신 분입니다.
하지만 힘도 장사이셨고 마음도 그에 못지 않은 장사이셨습니다.

그분이 지금은 오랜 우울증으로 긴 투병생활을 하고 계십니다.
저를 위해 모든것을 다 소진하셔서 일상을 살아낼 아무런
힘도 없으신가 봅니다.

저에겐 이 세상 어느 누구보다도 아름다운 나의 어머니.
식사를 하실때 생선 가시를 발라 어머니의 밥수저위에
당신이 그랬듯 이제는 제가 당신께 그렇게 합니다.

집으로 돌아 오는길...
당신이 멀어져 가는 저의 차를 보면서 가슴 아파 하심을 압니다.

아아....,
내년 봄에는 그렇게 젊은날의 웃음을 되찾으셔서
이렇게 커버린 저에게 감꽃 목걸이를 해 주시기를...
그 목걸이를 하고 그 유년시절의 고운 어머님을 만나고 싶습니다.
가장 내안에서 그리운 사람...나의 어머니에게로...

****이글은 저의 남편이 어느 방송국에 보냈던 사연입니다.
가슴이 아파서 제가 다시 이곳에 올렸습니다.

가 을 내 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