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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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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답게 늙어가는 방법 28


BY 녹차향기 2000-12-11

자알~~~ 다녀왔습니다.
어디요?
친정집요....
서울 쌍문동이 친정이라 사실 맘먹으면 하루에도 몇번쯤은 왔다갔다 할 수 있는 거리건만, 내 먹고 사는 일만 요란해서 맨날 뒷전인 친정엘 엄마생신을 기회로 1박2일로 다녀왔어요.

'어머님. 저 다녀올게요...'
'그래. 잘 다녀와라. 나두 뭔가 선물을 보내드리고 싶은데, 올해는 영 형편이 여의치가 않구나...'
친정아버지, 어머니 생신에 시골에서 올라온 쌀이나, 작은 화장품 같은 것을 선물로 보내시곤 하셨는데, 올해는 일이 여러가지 틀어지는 바람에 돈문제로 고생을 하고 계신 시어머님은 쓸쓸한 목소리로 말씀하셨어요.
'괜찮아요. 형편에 닿는대로 살면 되지요. 혼자 계셔서 쓸쓸하실텐데.... '
'내 걱정은 말고 다녀와라.'

친정가는 발걸음은 가볍기만 해요.
엄마가 강릉가시고 안 계시는 빈집은 썰렁하기만 했지요. 동생과 인근 대형마트에 가서 장을 봐오고, 우리끼리 저녁을 지어 맛있게 먹었지요. 대전사는 막내내외도 때맞춰 도착해 주었고요...
엄마는 우리가 쌀도 못 찾아 먹을까봐 쌀바가지 하나엔 '12월9일저녁', 또 다른 쌀바가지엔 '12월10일 점심' 이라고 미리 준비를 해 두신거 있죠?
배추쌈 싸먹으라고 속이 노오란 배추를 가지런히 씻어놓으시고, 맛있는 된장으로 장국을 끓여놓으셨더라구요.
그걸 보니 왜 눈물이 핑 돌아요?
'칫... 엄만 우리가 아직도 애긴줄 알고, 이렇게 다 해놓으시다니..'
동생에게 이런말을 첨에 꺼낼 땐 웃음이 났었는데, 이야기가 끝날 즈음엔 목이 메여 왔어요.

나중에... 나중에....
친정이라고 찾아왔을 때 반겨주는 엄마도 없고, 이렇게 며칠 먹을 쌀이라고 적어주는 엄마가 없고, 수시로 전화해서 방 차냐? 무슨 반찬해서 저녁먹었냐고 챙겨주는 엄마가 없으면 어떡하죠?

우리끼리였지만 그래도 즐겁게 술도 한잔씩 나누고, 텔레비젼에서 하는 영화도 보고... 얘기꽃을 피우다가 늦게늦게서야 잠이 들었지요..
다음날..(일욜)
강릉에서 맛있는 오징어회와 털이 숭숭나 있는 꽃게, 바닷바람에 잘 마른 코다리, 문어를 사들고 엄마,아버지가 도착하셨죠.
오전에 팥밥도 만들어 놓고, 잡채도 하고 소고기는 저녁에 잘 재워두었지만 역시 바닷냄새가 물씬 풍기는 그 싱싱하고 산뜻한 맛엔 아무것도 아니더라구여.
다들 어쩜 이렇게 맛있냐며 밥을 한그릇씩 비워냈습니다.

언젠가부터 생크림케?揚?대신하여 상에 오른 카스테라케?恙?초를 꼽고(생크림보다 훨씬 좋아요....) 우리모두 노래를 불렀어요.
그리고는 곧이어 손주들의 재롱이 이어졌지요.
초등학교 6학년인 언니네 큰아들이 어찌나 가수흉내를 그럴듯하게 내는지 다들 배꼽을 잡았어요.
그러자 4살,5살짜리 조카들까지 서로 앞다퉈 자기네들이 할 수 있는 모든 노래와 재롱이 쏟아져 나왔지요.
아마 그 재롱을 보는 동안엔 이 세상에 우리보다 행복한 사람들은 없었을 거예요.

엄마,아버지의 주름살도 환하게 걷어지는 것 같았어요.
혼자 계시는 시어머님이 내도록 마음에 걸려 오후가 넘어서자 집에 돌아올 준비를 했어요.
엄마는 또 시어머님 갖다드리라고, 오징어랑 코다리를 싸주시겠지요?
강릉에서 뽑아오셨다는 배추까지....
그걸 들고 지하철을 오르내리는 괴로움이 좀 있었지만, 집에 돌아와 다시 해 먹으니 정말 일품이었어요.


친정을 옆에 가까이 두고 사는 사람들, 친정엄마를 하루에도 몇번씩 볼 수 있는 사람들, 아예 친정에서 계속 살고 있는 사람들 진짜 친정엄마한테 잘 해드려야 해요.
가까이 살다보면 좀 더 소홀해지기 쉬운 법이니까요.
글구,
시어머니와도 함께 하는 시간들이 많아지다 보면 시어머니도 친정엄마에 못지않은 그런 마음이 들게 마련이예요.
서로가 서로를 배려하고 이해하고 존중하는 마음이 있다면 아주 아름다운 고부간이 될 거라구 생각하고 있어요.

유난히 수은주가 뚝 떨어진 저녁..
밖에 나갔다온 남편이 낼 아침엔 몇명 죽었단 기사가 나올까 겁난다 할 정도래요.
춥지 않게 보온에 신경 쓰세요.
실내에 빨래를 좀 널어놓거나, 가습기도 가동시키고, 다른 날보단 좀 더 불을 넣으세요.
그리고 어쩜 그 '불' 보단
훈훈한 사랑이 넘쳐나는 집이 젤 좋은 거겠죠?

모두들 평안한 저녁되세요.
이불 꼭꼭 덮으시고,
찬바람 조심하세요.

안녕히 주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