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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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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일요일 오후


BY 雪里 2003-02-16



빨래를 널러 올라갔던 옥상에서
한줄로 죽 매달아 놓은 옷들을 흔드는 바람은
어느새 새계절의 냄새를 담고 있었다.

거실 한구석에서 옴짝 못하던 종이박스속을 벗어나
커다란 다라에 담겨 햇살을 받고 있는
메주덩어리 다섯개에도,

시간 나는대로 담갔던
뚜껑 열린 새고추장 항아리 두개에도,
봄느낌이 나는 햇살은
보드라운 감촉으로 비춰들고 있다.

깊은 호흡을 하며 가슴으로 빨려 들어온 공기는
움츠려 있던 묶은 감정을 쑤셔대고는
감춰진 내작은 느낌을 살려 내기에도 충분하다.

친구 생일이라고 자정이 넘어서야 몰려 들어와
좁은 방에서 끼워자기를 하고 있는 작은아들을 친구들과 모두 깨운다.

식탁에 둘러앉아 퍼주는 밥을 하나씩 차지하고 수저를 드는
아이들이 모두 내 자식 같다.
꽉찬 느낌 같은것이 들어 든든한데,
아마도 이래서 옛 어른들이
여럿자식도 많지 않게 키워 내신 모양이다.

남비에 국을 좀 퍼서 담고,
간단한 그이의 점심을 챙겨가지고 내려오며 나는,
몇번을 망설이다 점심 보따리를 스쿠터 발판위에 얹고는
안장속에 있는 수건을 꺼내 먼지를 대강 털어낸다.

그렇게 열심히도 애용하던 스쿠터를 밀쳐두고
나는 겨울 내내 바람?♣隔?있는 차만 끌고 나 다녔던가보다.
도무지 주인인 나를 잊었는 양 거부를 한다.

겨우 시동이 걸린 스쿠터에 올라 거리에 나오니
나마저도 이 쇠붙이에 낯이 설다.

추위를 핑계삼아 무심하게 팽개쳐 두었다가
콧속으로 들어오는 부드러운 바람에 가볍게 동하는 주인을
마음에 들지 않아 하는 마음이, 이 기계에도 있을것 같아
좀 미안한 마음이 든다.

발목 아래를 후비고 들어오는 바람이 아직은 좀 시렵지만
얼굴을 비껴가는 바람은 한결 부드럽다.

이제 나의 이 작은 조랑말을 애용할 수 있는
좋은 계절이 아주 가까이 오고 있으면서
그의 체취를,
미리 내게 날려 보내주고 있는것 같은 날씨의
모처럼 한가한 일요일 오후.

보름명절을 지낸 시장은
장날인데도 한산하기만 하다.

다들 바람 쐬러 갔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