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정을 조금 남겨둔
밤 11시 넘어
가스 렌지 위에 주전자를 올리고 불을 피운다
"이 시간에
커피를 마시려 하다니!"
스스로도 어이없다
오늘밤 잠은 어찌 하려고 ,,,
열망처럼, 욕망처럼
갑자기 덤벼드는
커피 갈증
"커피가 마시고 싶어"
나는 주저 없이
물을 끓인다
따스하고 아늑한 내 집에서,,,
별 것도 아닌 이 일에
갑자기 행복하다는 느낌이 들어
잠시 생각해 봤다
오죽이나 별 볼일이 없으면
커피 한 잔 끓여 마시는 일에
행복이라는 단어가 생각날까
그래
그 동안
참 많이 슬펐다
참 많이도 울었다
어느 날 갑자기
살아야 할 목표를 잃어 버렸고
내가 존재해야 할 이유를 놓쳐 버렸다
깊은 슬픔과 통곡의 계곡을
가슴을, 머리카락을 쥐어뜯으며
맨 발로 걸었었다
절대로 헤어나올 수 없을 것 같던
끔찍하고 참혹했던 시간들도
어쩔 수 없다는 듯 조금씩 멀어져 가고 있다
그래
봄이 오면
헐벗은 나무에 새 잎이 돋듯
내 가슴 한 구석에
볼품없는 잡초라도 돋아나겠지
더 이상 내려갈 곳 없는 바닥에 닿았으니
이젠 올라갈 일만 남아 있구나
그래서
작은 향기로나마 가슴을 채워주는
따듯한 커피 한 잔에도
행복을 느끼게 되는가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