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이네요, 정말.
입춘이 지났다고 정말 봄이 오고 만걸까요.
앞에도 아파트, ?x베란다 너머에도 아파트가 보이는
그런곳에 살적에는 몰랐네요.
입춘이라는게 , 여섯시 내고향에서나 봄직한
세월이 삭을 대로 삭아있는
어느 소슬대문 앞에 붙여져 있는 누렇게 바랜 한지에
써있는 입춘대길이라는 글귀나 연상시킬뿐,
아무 감흥도 없었고
입춘이래도 봄을 느낄 수 없었네요.
근데, 코앞이 산이고 문을 열면 들이고 밭이라서 그럴까요?
입춘이 지난 다음날부터 양지 바른데를 가만히 들여다 보고 있으면
아지랑이가 가물가물 피어오르는 것이 보이네요.
황토흙담 옆에 볕 잘드는 둔덕에는,
눈 녹아 흐른지 얼마 되지 않았건만
파릇파릇 이름 모를 야생초들이
자그만 머리들을 내밀고 서로 키재기들을 하고 있네요.
게중에는 모진 겨울 바람에도 ,무릎까지 닿는 눈쌓임 속에서도,
얼었다 녹았다를 되풀이한 언땅에서도,
질긴 생명력으로 꿋꿋이 버티어
겨울을 난 야생초 무리들도 있어요.
이를테면 누가 일부러 꽉 밟아 놓은 것처럼 땅에 납작하게
붙어있는 지느러미 엉겅퀴 같은 것이 용케도 겨울을 났던거죠.
새로 새잎을 거느리고 나타나는 무리들도 있는데
그 색깔이 신선한 연둣빛이 아니고 거무튀튀한 흑갈색이라서
자칫 지나치기 쉬운 냉이도 있어요.
그렇게 맛나지 않을 듯한 색감을 가진 풀을
된장국에 넣어 드셔보세요.
얼마나 향이 맛난지
입안이 내내 봄향기로 신선하답니다.
땅위에서만 봄이 돋는게 아니랍니다.
불어오는 바람도 어쩐지 따스하고
어쩐지 귓볼을 간지럽힐듯 부드럽습니다.
햇볕도 어쩐지 들뜬 듯 환하고
내 마음과 몸도 어쩐지 간질간질거립니다.
집앞으로 낯선 차 한대만 지나가도
반가운 손님이 불쑥 집으로 찾아들것만 같구요.
오토바이를 날렵하게 타고 다니는 빨간 헬멧을 쓴 우체부 아저씨가
소원해진 친구의 안부나 친지의 소식을 전할것만 같습니다.
혼자만의 기차여행을 떠나고도 싶습니다,
옆에 누가 앉을까하는 처녀적 기대감으로 설레이고도 싶고
빠르게 지나치는 산과 물에 온갖 상념을 같이 흘러보내는 기차여행.
그러다 내린 이름 모를 도시의 다운타운을
하릴없이 쏘다니고도 싶고,
재즈바에서 척 맨지오니라든지 마일즈 데이빗의 연주를 들으며
칵테일 한잔의 사치도 부려보고 싶습니다.
꽃무늬 아롱다롱 새겨진, 레이스 팔랑팔랑거리는
화려한 부라우스에 치렁치렁한 플레어스커트를 입고서 말이지요.
아, 봄처녀가 제 오셨네요.
이 퍼질러진 아줌마 몸뚱이 안으로 봄처녀가 납시었네요.
같이 봄놀이 할 봄총각을 기다리는 봄처녀의
이 봄몸살을 또 어떻게 이겨내야 할른지, 걱정입니다.
봄이 오는 길목에서,
마음만 봄처녀인 아낙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