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에도 수그러들지 않는 더위는
열대야라는 말을 실감하게 한다.
이틀 전 새벽 1시가 되어서야
겨우 설핏 잠이 들었는데
수선스런 소리에 깼다.
머리 맡에 둔 자명종 시계를 보니
새벽 2시!
한참을 잤다 싶었는데 겨우 한시간
잠이 들었던 모양이다.
새벽이라 할 수도 없는 심야에
이 무슨 소란인가...싶어 잠옷인 채로
밖으로 나갔다.
골목 맞은편에 건물 두 동짜리
서민 아파트가 있는데 웬일로 그 아파트
집집마다 불이 훤하게 밝혀져 있고
맨발로 뛰어나온 여자 둘과 그 뒤를
쫓아나온 듯 싶은 남자 둘이
심야 소란의 주인공들이었다.
나 이외에도 벌써 이십여 명의 이웃들이
나와 무더운 심야에 무슨 소란인가...
졸린 눈을 부비며 그들을 보고 있었는데...
(세상에서 가장 재미있는 것이
싸움구경이라는 말이 내 머리를 스쳤다)
그런데 재미로 볼 광경이 아니었다.
그네들은 싸움의 원인이 되었을
상황을 짐작할 수 있는 말은
한마디도 없이 그저 입에 담지 못할
무수한 욕만을 상대를 향해 퍼부어대면서
마침내는 폭력전이 벌어졌던 것이다.
솔직히 이런 장면을 보는 것은 처음이라
너무도 놀랍고 무서워서 다시 집안으로
들어갈 엄두도 나지 않았다.
한 여자가 젊은 남자를 향해 욕을 하며
뺨을 갈기자 남자는 차들이 세워진
벽쪽으로 여자를 떠다밀었고 여자는
시멘트 벽에 세게 부딪히더니 바닥으로
나동그라졌다.
어...어...어...
보고 있던 사람들이 말릴 틈도 없이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여자가 일어나며 그래..죽여라...죽여...
악다구니를 쓰며 남자 쪽으로 달려가자
그 남자, 거짓말처럼 붕...몸을 날리더니
오른발로 여자를 그대로 가격해 버렸다.
영화에서 보는 장면처럼(신라의 달밤)
남자의 몸이 정말 공중을 휙..나른 것이었다.
여자는 정확히 옆구리에 발차기를 얻어맞았고
그때서야 구경하던 사람들은 구경만 해서는
안되는 일이구나...감이 잡혔다.
우리 앞 집 지하 셋방에 사는 아줌마가
중학생 아들내미 귀에다 뭐라고 속삭이는
모습이 보였고 그 아들은 뛰어가더니
집에서 핸드폰을 들고 나왔다.
사람들은 말로 해...싸우지 말고 말로 해...
안타깝게 외쳤지만 술도 마신 것 같은
그들의 활극은 더욱 격해져 갔다.
ㅆㄴ의 ㅅㄲ야....
ㅆㅍㄴ아...
ㄱㅈ같은 ㄴ아...
휴...
그들이 내뱉었던 욕을 도저히
다 옮길 수 없다.
마침내는 집집마다 뛰쳐나온
아저씨들이 힘을 써서 그들을
제압하기까지 여자 둘은 계속 우리를
향해 아줌마, 신고해...아줌마, 경찰 불러...
쉰 목소리로 외쳤고 앞집 중학생이
드디어 신고를 했다.
경찰 백차는 오 분이 안되어
경조등을 번쩍이며 도착했다.
경찰관 두 명이 타고 왔는데
문제의 이 사람들, 경찰이 왔는데도
계속 싸움이었다.
경찰이 보는데서 주먹질 하면 그것이 곧
증거가 될텐데 참, 무지막지한 사람들이었다.
증인이 필요하다는 경찰의 말에
앞집 아저씨와 다른 아저씨 한명이
경찰서로 따라 갔다.(물론 문제의
심야 혈투족들도 백차에 실려 가고)
몰려 나왔던 사람들이 우중우중 집으로
돌아가고 안방으로 들어와 시계를 보니
새벽 세 시, 그들은 한 시간이 넘게
그 난리를 친 것이었다.
다음 날 아침
진정이 되지 않는 가슴으로
앞집 이층으로 가서 아줌마에게 물었다.
(신고한 지하 셋방 아줌마랑 둘이 사이가 별로다)
새벽에 싸움난거 아세요?...
그런데 내쪽을 쳐다보지도 않고 하는
아줌마의 말이 아주...엽기, 그 자체였다.
응...이 동네 싸움 잘 해...
그...그게 아니고 저 아파트 사람들 같던데요...
응...저 아파트 사람들 자주 싸워...
작년엔 살인 사건도 났는 걸...
뭐, 공장 다니는 마누라가 밤 9시 넘어서
들어왔다고 남편이 마누라 죽도록 두들겨 팼는데
마누라가 옆 동네 사는 여동생 불러서
자매 둘이서 남편 목졸라 죽였잖어...
헉...그...그런 일이......
차라리 듣지 말 것을 그랬다.
아무리 이웃 사촌이고
말 못할 사정이 있다지만
그 얘기까지는 안듣는 것이
좋았을 것을......
그 사람들은 심야에 무슨 웬수진 일이
있어서 온동네 발칵 뒤집어 놓으며
집 밖으로 뛰쳐 나와 싸운 것일까?
우연찮게 목격하게 된 일이 지금도
기억 속에 두려움으로 자리잡고 있다.
이사온지 이제 두 달,
그렇게 나도 이 동네의 일원이
되어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