낮은 초록 슬레이트 지붕으로 된 ㄱ자 모양의 우리 집은
다섯 칸으로 나눠져 있다.
문을 열고 들어서면, 다섯평 정도의 가게와 방 사이의 이십여년을
하도 여닫아 홈이 다 닳아진 한지문을 열면 작은 방이 있다.
가게를 보면서,TV를 보고,밥을 먹는 이 방엔 아이들과 다 둘러 앉으면 남은 공간은 네 귀퉁이 밖에 없다. 어른 손님이라도 오면 아이들은 옆방으로 보내야 한다.
여기가 가게 보면서, 컴퓨터 자판을 두드리기도 하는 나의 주 생활
공간이다.
이 방과 드르륵거리는 황토색의 나무 문을 사이에 두고 큰 방이 있다.
작은 우리 집에 비하면 크긴 큰 방이다.
세명의 아이들이 두자리의 이불을 깔고 자는 방이다.
남쪽 벽에 보루네오 갈색 원목 장농 열두자와 딸 아이의 책상과 두짝의 장농이 더 있고 책장과 진열장으로 빈 벽은 보이지 않는다.
방바닥에 걸리는 아이들의 장난감을 피해 오른쪽으로 꺽으면
다시 나무문이 열린다.
침대 하나와 옷장하나 TV를 놓고 나자 통로 밖에 남지 않은 이
작은 방은 원래는 시할머니 방이었지만, 이제 손님방이 되었다.
일인용 침대의 주인은 자주 바뀌어, 요즘은 중3의 외조카가 오후부터 밤을 지내고, 아침부터 오후 네시까지는 서울에서 돌아온
시동생이 잠을 잔다.
오늘 중학교를 졸업한 조카가 집으로 가면, 아마 외삼촌이 와서 지내게 될 것이다.
다음 마지막 방은 벽은 붙어 있으나 마당을 건너 목욕탕으로 쓰는
물부엌을 건너 들어 가는 방은 시어머니 방이다.
이십 여년 전에 홀로 되신 시어머니 방문을 열면, 얼굴을 내밀기도 전에 파스 냄새가 먼저 코에 와 닿는다.
수협에서 "모슬포 수협'이름으로 판매되는 옥돔,고등어, 갈치등을
가공하는 일을 하시는 시어머니는 항상 다리가 아프고,
손이 부어 있다.
땅이 서른평에 마당을 빼면 스물 다섯평이 될까말까한 공간에
내 아이 셋, 남편과 나, 시어머니, 시동생 그리고 한사람 혹은
두 사람 이 모여 산다.
오후 다섯시 시동생의 저녁 밥상을 시작으로 보통 세번을 차려야
저녁식사가 끝이 나고,
세탁기는 하루 두번은 돌아가야 한다.
이렇게 늘어 놓으니, 정말 복잡하게 사는 것 같지만, 꼬마 둘과 나를 빼면, 나머지 가족들은 집에 있는 시간이 다 다르고,
차곡차곡 정리하는 걸 포기하고 사는 나에겐 별로 그렇지도 않다.
더구나,나는 시어머니를 모시고 사는게 아니라,시어머니 집에 들어와얹혀 사는 것이므로 선택의 여지도 없다.
이 작은 집으로 사람이 모여 든다는 것은, 그러나 별로 좋은 일이
아니다.
분가했던 우리가 사업에 실패하여 여기로 돌아 왔듯, 여기로
돌아 오는 사람들은 어려움에 부딪힌 사람들이다.
그리고 다시 시작하려는 사람들이다.
이 곳은 땅끝이며 바다의 시작이고,
바다의 끝이며 세상의 시작점이다.
이 집에서 다시 세상을 향한 꿈을 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