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일,
매주 토요일 마다 아이를 데리고 '영어연극반'에 다닌지
어느덧 일년째다. 이젠 학교에 가야할 아이라서 이번달이
마직막인 셈이니 '유종의미'를 거둘 심산으로 더 열심히
안빠지고 아이를 데리고 나선다.
이젠 여덟살이니 혼자 보내도 되겠지만, 어쩐일인지
아이가 공부하는 건물 바로앞 도로는 신호등을 무시하고 달리는
차들이 유난히 많아서 집에서 10여분 남짓 걸리는 거리를 꼭
데려다 주어야 맘이 놓인다.
오늘은 비가 살짝 뿌려지고 있었다.
'엄마, 가랑비다'라고 하늘을 쳐다보던 아이가
가늘게 내리는 비를 표현했다. '가랑비'라는 말이 참 예쁘다고
생각했던건, 아이가 그 작은 입술로 풀잎처럼 여리게 말을 했던
때문이었다. '우산가져 가야지?'라며 걱정스럽게 나를
올려다본 아이를 데리고 늦었다며 그대로 가던길을 갔던건,
어쩌면 이 가랑비가 금방 그칠것 같단 느낌이 들어서였다.
아이를 강의실에 들여보내고
난 어제 읽다만 법정스님의 '물소리 바람소리'를 마저 읽었다.
휴게실 한쪽에서 좀더 조용한 곳을 선택해서 앉았는데
오늘도 아니나 다를까, 수영을 끝마친 한무리의 아주머니(나역시
아점마지만...)들이 왁자지껄한 소리에 웃음소리까지 섞어서
들어왔다. 수영을 하고난 뒤의 출출함을 달랠 심산이었던지
한사람은 가져온 떡을 내놓고, 다른사람들은 음료수등등... 각자
가져온 것들을 꺼내서 먹으며 다른사람들은 안중에도 없는듯
자기들끼리 먹고 떠들고 있었다.
'침묵'의 가치를 아는 사람만이 진정으로 말을 잘하는 사람이라는
취지의 책을 읽다말고, 얼른 일어나지 않을것 같은 그사람들을
두고 내가 일어나고 말았다.
다행히, 다른쪽에 앉아 있을만한 의자가 있었고,
정말 다행히도 거기엔 책을 읽으며 아이를 기다릴수 있을것 같은
침묵의 공간이 나를 맞아 주었다.
마침 이런 글이 눈에 들어온다.
'침묵은 인간이 자기 자신이 되는 길이다.
우리가 무엇이 되기 위해서는 땅속에서 삭는 씨앗의
침묵이 따라야 한다. 지금 우리가 어떤 종류의 사람인가는
우리들 자신이 그렇게 만들어온 것이다.
겨울은 밖으로 헛눈 팔지 않고 안으로 귀기울이면서
여무는 계절이 되어야 한다.
머지않아 우리들에게 육신의 나이가 하나씩 더 보태질때
정신의 나이도 하나씩 보태질수 있도록....'
아이의 수업이 끝나고 밖으로 나서는데 빗줄기가 제법
굵다. 가랑비의, 여린풀잎같은 모양에 마음을 빼앗겨
우산을 가져오지 못한 나의 실수에 후회가 인다.
어쩌니... '파카모자라도 써! 그리고 뛰어!'
아직도 비가 내린다. 토요일 오후가 고요히 저물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