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근시간으로 다가서는 시계초침을 응시하며
오늘 저녁은 또 무엇으로 식탁을 채워야 할까를 궁리한다.
준비되어 있지 않은 상황에서 스피디한 손놀림으로
기다림에 지친 아이들에게 기쁨을 주기란
생각보다 쉬운 일은 아닌 것 같다.
냉장고 안에 있을 재료들을 떠 올리며 오늘 저녁 메뉴를 머리속에 구상하며
차에서 내리는 발걸음만 공연히 분주하다.
하얀 쌀밥을 대하면 왠지 더럭 겁이 나서
오늘은 윤기 흐르는 흑미밥을 해 보기로 한다.
콩을 싫어하는 아이들도 일일이 골라낼 수 없어서인지
쌀크기랑 같은 흑미밥은 맛있게 먹는다.
미리 장을 보아다 둔 싱싱한 고등어로 조림을 할 요량으로
맛 있게 익은 알타리 김치와 무우를 깔고는 갖은 양념장을 얹어
자작하게 고등어 조림을 해 본다.
시골서 가지고 온 된장에 말랑한 시래기를 조물 조물 무치다가
다시마, 무우, 멸치를 넣고 개운하게 만들어 둔 국물을 붓고는
팔팔 끓어 오를 때 매운 고추를 썰어 넣고는 고추가루로 칼칼함을 더해 주니
맛깔스런 된장찌개 완성!!
밥 짓는 냄새가 구수하게 퍼질 무렵 이런 저런 밑반찬을
예쁜 그릇에 옹기종기 옮겨 담고 아이들과 둘러 앉으니
소박하지만 흐믓하기 그지없는 밥상이 된다.
하루 일과를 마치고 집에 돌아 오면
솔직히 만사가 귀찮아져서 대충 저녁 먹고
일찌감치 자리에 눕고 싶어지는 날이 거의 대부분이다.
하지만 그럴수록 힘을 내야만 한다.
아침은 아침이니 간단히 먹고,
점심은 엄마가 없는 낮시간 동안 아직도 방학중이라 손수 챙겨먹는
어설픈 밥상 ...
상황이 그러하기에 저녁만큼은 엄마의 마음이 담긴 한끼 식사를 아이들에게 주고 싶어서
마치 먹기 위해 사는 사람처럼 부엌에서 종종걸음을 친다.
좋아하는 음악을 집안 가득 울려 놓고
콧노래 흥얼 거리며 아무 생각 없이 마냥 단순해져서
오밀 조밀 밥상 차릴 준비를 하는 시간은
몸은 피곤하지만 내가 가장 행복해 하는 시간이다.
어렸을 적 부터 매운 음식을 잘 먹는 아이들이었기에
따로 아이들 반찬을 만들지는 않는다.
그래서인지 얼큰한 음식도 마다 않고 맛있게 먹는 아이들이
인스턴트에 길들여 지지 않아서 너무 대견하다.
엄마의 힘들어함을 눈치채기 시작한 아이들은
낮동안 시간이 나면 빨래 개기, 집안 정리 정돈 등
이제는 제법 엄마에게 도움의 손길을 펼친다.
그런 날에는 어김없이 칭찬세례를 퍼 부으면
아이들은 한껏 비행기를 탄다.
방학동안 내내 스스로 챙겨서 학원 다니고,
아이들끼리 하는 식사이지만 설겆이 한번 남겨두지 않는 아이들을 보면
엄마로서 참 많이도 미안함이 인다.
이제 4학년이 되는 큰딸아이는 그런 일련의 자잘한 일들도 재미 있기만 하단다.
아이들이니 호기심에서 그러려니 생각하다가도
엄마를 조금이나마 이해하고, 도와야 겠다는 마음 씀씀이가 이뻐서
훌쩍 자란 키에도 불구하고 아기처럼 안아 주는 일도 마다 않는다.
개학이 얼마 남지 않은 탓인지 늦잠자는 습관을 고치기 위하여
며칠전부터 아침기상시간을 조금씩 빨리 하고 있는 아이들 ...
스스로 생각하고, 알아서 준비하며 느껴가는 그 과정들이
바로 자라고 있다는 증거이리라...
귀여운 밥도둑들에게 맛난 밥상을 차려줄 수 있는 시간 ...
그 시간이 내겐 아마도 가장 행복할 때가 아닌가 싶다.
이 세상의 모든 엄마들이 그러하듯이 ...
출근길에 상냥한 인사와 함께 엄마에게 건네던 비타민 씨 한알이
내게 힘이 되어 준다.
하루에도 몇번씩 드는 사회란 참 냉정한 곳이구나 하는 생각의 조각들을
나는 오늘도 조용히 잠재울 수 있을 것이다.
알아 주는 이 없어도 스스로 부끄러움이 없는 삶이라면
살아볼만한 것이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