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부모님께서 오셨다.
새집을 마련하여 이사를 한 시누이네에 가시고자 이웃한 우리집엘
먼저 들르셨다.
어머닌 늘 내게 이런 저런 집안의 이야기를 모두 하신다.
얼마 안되는 연금을 타서 생활하시면서도 늘 자식들 걱정에 여념이 없으시다.
벌써 오시는 길에 작은 아들네에 분유 사들고 가셨더니 문이 잠기고 아무도 없어 빈 집에 분유만 놓고 오시는 길이시란다.
대기업에 근무하다 구조조정으로 직장을 그만 두게 된 서방님 걱정에
늘 시름을 놓지 못하신다.
행여 아기 분유도 못 사 먹이는 듯 하여 그 더위에 분유 사다 넣어 주는 그런 부모님 보면서
자꾸 치밀어 오르는 화가 나를 어찌할 수 없게 한다.
사람답게 산다는 것
진정 부모에게 아무런 마음의 짐조차 지어 드리지 않아야 한다는 게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든다.
용돈을 많이 드린다거나, 좋은 환경에서 남은 여생을 살게 해 드리지진 못한다해도 행여 자식들의 생활에서 그 분들이 시름을 덜 수 있게는 해드려야 할텐데.....
그런 생각때문에 못내 마음이 아프다.
어머닌 말씀하신다.
시집보낼때 어려운 살림때문에 직장 생활에서 집에 보태고
정작 자신은 넉넉한 혼수도 마다하고 시집간 시누이에 대한 애틋함이 이렇게 넓은 집을 장만한 지금까지도 마음의 짐으로 남아 있다 하셨다.
그래서 퇴직하실때 자식들에게 해 줄수 있는 마지막 선물이라는 말씀과 함께 아들 딸들에게 고루 천만원씩이라도 나눠주려 하셨던 그 분들....
마지막 선물이라는 그 말 때문에 더더욱 가슴이 저려 차마 받아들 수
없던 그 돈의 의미를 떠난 그 큰 사랑을 난 잊을 수가 없었다.
우리가 이 집을 사서 이사를 올 때에도...
동서네가 집을 살때도....
어김없이 그분들은 그렇게 당신의 큰 사랑을 주셨다.
넉넉한 집안에서 아무렇지 않게 건넬수 있는 액수일지는 모르지만
몸이 아프셔서 늘 병원에 다니시면서도 자식들을 위하여는
당신들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고저 하는 모습에서
부모란게 저런것이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이번에 시누이가 집을 샀을때도 그분들은 마지막 선물을 건네는
마음으로 또 얼마간의 돈을 찾으시려 했었나 보다.
그 마음을 미리 알아차린 시누이는 되려 통장으로 천만원을 부치면서
애초에 주시려 했던 것은 그냥 가지고 계시라고....
갑자기 아프시기라도 하면 쓰시라고.... 했단다.
세상에....
난 그동안 나의 삶에만 매달려 또 얼마나 정신없이 살아온 걸까....
갑자기 둔기로 머리를 얻어맞은 듯한 충격이 일고 있었다.
난 그동안 얼마나 나만 아는 딸이었던가가 새삼 부끄럽게 다가오고
있었다.
나만 살기에 바빠..... 늘 형편이 되질 않아....
이런 저런 이유로 진정한 가슴으로 내 부모를 위하여 마음 한 구석을
비우고 살지 못한 내 자신이 참 한심하게 느껴지고 있었다.
사람들은 아무리 여유가 되어도 마음이 없으면 자신의 몫에서
뚝 떼어내어 마음이 담긴 선물을 하기란 참 어려운 일이 아닐까 싶다.
살아 생전 마지막 선물을 하는 마음으로 자식에게 내가 해 줄 수 있는게 무언가를 생각하는 부모와.....
언제 아플지 모르는 친정 부모에게 그 선물을 받자니 마음이 편치 않는 딸, 그러면서도 자신의 남편에게는 부모님의 얼굴을 세워드리고 싶은 딸의 아주 고운 마음을......
나는 읽을 수가 있었다.
어제 저녁때 두 분을 모시고 시누이네엘 갔었다.
집이 너무 좋다고 흐믓해 하시는 모습이 참 보기 좋았다.
내심 이런 생각해 본다.
아주 열심히 살아서 그 좋아 보이는 집에 남은 여생을 사시는 두분의
모습을 나 혼자 그려 봤다. 아무도 모르는 나만의 그림을.....
우리 동서가 살림을 좀 헤프게 하는 것 조차 늘 걱정이신 우리 시부모님들의 이야기를 내게 스스럼 없이 하시는 것 조차
늘 나를 돌아 보게 한다.
나는 어떤 며느리이며, 어떤 딸이었던가를 생각해 보며
사람답게 산다는 것의 어려움을 또 한번 느끼게 된다.
마음이 있어도 마음을 표현할 수 있는 방법의 하나가 되고 있는
물질이 없으면 때때로 자신도 모르게 묻혀질 지도 모르는 마음이
아주 가끔씩 서글프게도 하는 삶이지만
그래도 내 아주 가까운 곳에서 이런 아름다운 일들이 일어나고
있는 세상을 사는 내게
그래도 행복은 가까이에 있지 싶다.
내 마음을 한마디도 아직껏 표현하지 못했지만
우리 형님 정말 참 착하고, 대견한 딸이다.
나도 그런 딸이고 싶어 늘 노력하며 살고 싶다.
언젠가 시간이 된다면 시원한 맥주라도 한잔 하면서
새로운 이웃이 된 형님과 오븟한 이야기로
나의 마음을 전할 수 있을까?
아버님, 어머님은 참 좋으실 것 같다.
든든한 딸이 셋이나 있으시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