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닭 우는 소리가 멀리 가물가물 들려온다.
저 우는 소리를 듣고 있자니,
정말 뭐라도 알리려는 듯한 소리품새다.
특이한 억양의 굴곡과 반복이
새벽 납시오~, 아침 납시오~ 하는 듯이 들리는 게 말이다.
며칠 계속되는 감기때문에 이밤도 잠을 설치고 이렇게
신새벽 첫 닭 울음소리를 듣도록 깨어 있다.
몸이 고장나서 고생되기는 해도,
새벽에 이리 자주 깨어 있으니, 그간 생각 못하고 어물쩍 지나가
버린 여럿 일들을 반추해 보는 계기가 되어
그리 나쁘지 만은 않은것 같다.
요즘, 나의 모습들, 지난 나의 모습들을 숙고해보았다.
왜 그리도 잘난 척을 하면서 산 세월이었는지,
어둔 방안에서도 부끄러워, 이불속으로 얼굴을 숨겨야할 지경이다.
남편을 만나 산 지난 수년간의 세월.
나 하나와 아이들만 바라보며 살고 있는 그이인데,
그런 그에게 참 몹쓸 짓을 많이도 했다.
나를 왜 이리 고생 시키느냐고 ,왜 이리 힘들게 하냐고,
철없는 원망의 화살을 그에게로 늘 돌렸다.
당신때문에, 당신을 만나서 시집살이도 고되고
사는게 온통 답답하고 고되다고 ,
그 많은 원망과 미움을
다 그에게로 쏟아 부었다.
아무것도 모르는 아이들에게도 마찬가지다.
왜 이리 엄마를 힘들게 하느냐, 왜 이리도 귀찮게 구느냐,
하면서, 그들의 존재를 짐스러워하고 버거워하기도 했었다.
밀어내고 싶어하고 벗어나고 싶어했던 시간들.
왜, 내 주위의 사람들이 가까이 다가오면
나는 그들이 벌리는 팔안으로 기꺼이 뛰어 들어
진정으로 살갑게 안겨 들지 못했던가.
내 모습 다 내보이고, 솔직 담백하게 살며,
보듬을 건 보듬으면서, 서로 다정하고 끈끈하게
왜 살맞대지 못했던가 말이다.
지난 세월이 어지간히도 부끄럽다.
그래,이 나란 그릇이 왜 이리도 깨어져
여기 저기 발에 채이며 굴러다녔는지도 이제야 알것 같다.
늘 넘치면은 비워내고, 또 비워내는 그릇이어야 하는데,
탐욕과 자만으로 꽉꽉 채워놓고 누르기만 했으니,
견디지 못하고 이리 깨어지고 저리 깨어지고만
그릇이 될 수 밖에.....
진정으로 자꾸 자꾸 비우는 그릇이 되어야 하겠다.
자꾸 비워내어야
조금만 물질이 채워져도 감사하기가 빠르다.
조금만 다른 이의 사랑이 담겨져도 감사하기가 쉽다.
자주 비워내고야 만 빈 그릇이어야
자신의 탐욕이 그릇안에 또아리를 틀고 있어도
얼른 털어 내어 버리기가 쉽다.
자주 자주 비워내고야 만 허허로운 그릇이어야,
제 잘난 멋,최고인 멋 부리는
자만과 허영의 먼지가 조금만 쌓여도
금방 씻어내 버릴수가 있는것이다.
자주 비워내는 한해, 2003년이 되어야겠다.
내 살고, 남편 살고, 아이 살게 되는 2003년이 되어야겠다.
벌써 2월하고도 며칠이 지났건만
때늦은 각오로 부산한 새벽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