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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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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속으로


BY 생활속으로 2003-02-04

몇일전 명절이 있었다.
나는 시댁에 가지 못했다.
오랜만에 친정에서 설을 보내게 되었다.
아이와 나는 하얗게 눈이 쌓인 시골풍경을 접하게 되었다.
도시에서는 여기저기 흩어져있는 눈을 긁어모아도 한웅큼도 안되는,
그런 눈을 모아서 눈사람을 만들어달라고 떼를 쓰던 아이니,
얼마나 좋았을까, 생전처음 보는 눈이었을것이다. 아이에게
자기 키만한 눈사람을 만들어주니 좋아서 어쩔줄을 모르고,
그모습이 하도 예뻐 사진한장찍고, 그렇게 친정에서의 하루가
시작되었다.
나는 아버지가 일찍돌아가시고 엄마와 같이 살았다.
나이차이가 있는 오빠가 결혼하고 우리는 같이 살림을 합쳐서 살았다.
오빠는 어려운 존재였고 사춘기를 오빠와 올캐언니 그리고 우리엄마,
이렇게 세명이 있는 편하지 않은 시기를 보냈다.
물론 나는 막내다. 친구들과 나와 비슷한 시기를 보낸 사람들은
나와는 다른 고민을 하고 지낼시기에 나는 가족들간에 벌어지는
여러가지 문제들을 너무나 잘알고 있었기에, 한밤중에도 고민하고
울먹이던 때도 있었다.
몇년전 엄마가 많이 아프셨다.
그렇게 정정하던분이 몇년의 병원생활과 침대생활과 가슴앓이로 인해
많이 늙으셨다.
원래장애가 있으셨던 분은 아닌데, 심한골절로인해 많이 몸이 부자연스럽다.
엄마의 남은 여생이 너무나 가여워 엄마를 한참이나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많이 회복은 하셨지만, 이제는 스스로 불구임을 인정하시고 남은 생을
그저 사고없이 살다가시기만을 바라신다.
나는 딸이다. 하지만 자식이다. 엄마를 늘 가까이서 지켜봤고,
어려운 시절도 함께 이겼고, 그리고 결혼하고서도 엄마와 가까운곳에 살았다.
그래서 늘 마음은 아팠다. 엄마를 너무나 가까이서 지켜봐야했기에....
우리집은 그리 화목하질 못했다. 그래서 엄마는 마음의 상처가 너무나 많으신 분이다.
이제 엄마는 전화로밖에는 자주 뵙지를 못하는 그런먼곳으로 이사를 가셨다.
혼자는 자식집에 한번와서 쉬다가지도 못하실 그런몸이 되어서...
엄마, 엄마는 나에게 `네가 있어서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하며 늘 말씀하셨는데, 이 자식은 엄마를 잊고 살고있어요.
자식도 자기의 가정을 일궈 가족이 생기면 부모를 잊고살아갈수 있다고 하더니 정말 그래요. 엄마를 안타까워하고 엄마를 위로하고, 그리고 나 스스로를 위로하며 살았는데, 이렇게 내생활의 고됨과, 내아이의 건강과 우리가족의 행복만을 생각하며 살고있으니...
엄마 이제 몸이 많이 좋으시니, 엄마 날씨좋으면 저희집에 모시러갈께요.
엄마 형편이 조금씩 풀리려하고 있으니, 너무 걱정말아요.
나에게 잘하고, 열심히 노력하고 있는 사위와, 똑똑하고 예쁜 손주가
있으니 이 막내는 돈만 조금 있으면 되잖아요. 잘 될거예요.
본인 말년의 모습이 결국 장애인의 모습으로 살아가게 될 줄은 몰랐다고 말하시지만, 엄마 이제는 조금 여유롭게 사시라고 몸이 불편하게 되었구나 그렇게 생각하세요.
엄마 잘할께요. 사랑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