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 잠들려고 하는데, 가게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린다.
새벽 네시.
요즘은 배들이 다섯시는 넘어야 출항하는데....
멜빵으로 이어진 고무 바지에 파란 장화, SK 주유소가 새겨진
빨간 점퍼를 입은 사람이 잠겨진 문 밖에 서 있다.
따뜻한 맥스웰 커피 여섯개와 1.5리터 포카리스웨트를 골라
건네주는 만원짜리 지폐에 묻은 것은 분명 멸치비늘이다.
멸치잡이 철이 된건가?
여기서 잡히는 것은'멜'이라 부르는데, 멸치볶음하는 작은 멸치가
니라, 손가락 크기에서 굵은 것은 작은 정어리만큼 큰 것도 있다.
하선정 멸치액젓, 추자도 멸치액젓,마라도 멸치젓, 하는 것들이
여기서 잡아서 가공한 것들이 많다.
또, 갓 잡아 올린 것들을 얼음을 넣고, 스트로폼 상자에 포장하여
서울의 어시장으로 실려 가 횟감으로도 쓰인다.
그리고 멜국, 멜튀김,말린 멜조림까지 그 조그만 생선이 쓸모도
많다.
싱싱한 멜은 머리를 잡고 손가락을로 배까지 쭉 당기면,
내장이 딸려 나온다.
그걸 씻어서 끓는 물에 넣고, 배춧잎을 넣어서 소금으로 간을 하면,
멜국이 된다.
약간 비릿하면서, 시원한 맛이 속이 확 풀린다.
멜튀김을 할땐 내장을 떼면서 , 살 속으로 조금 더 손가락을 깊숙이 넣어, 가시까지 한번에 발라내야 튀김을 통째로 먹을 수 있다.
따뜻한 멜튀김을 초간장에 찍어서 먹으면, 담백하고 맛있다.
(내가 한 멜 튀김은 먹어봐야 맛을 아는데...)
머리와 내장을 떼고,손가락을 옆지느러미까지 집어 넣으면 멸치가 완전히 펴진다. 그걸 햇빛에 한나절 정도 말린 후, 물 약간에 양념들을 넣고, 조리면 멜조림이 된다.
(갑자기 배가 고파온다. 아, 먹고싶어라!)
멜배들은 저녁 어스름에 열명 정도의 선원을 태우고 나가,새벽녘에 들어온다.
캄캄한 밤바다에 배 앞에 그물을 둥그렇게 펴놓고,
불잡이가 둥그런 집어등을 들어 그물 앞으로 옮겨오면,
야행성 멸치 떼가 빛을 따라 몰려들다가 그 빛을 따라 그물 안으로 따라 들어 간다.
까맣던 밤바다가 하얗게 반짝이는 그 순간 "내라"하는 선장의
신호에 따라 은색으로 반짝이는그물을 끌어 올린다.
선원들은 이 순간이 감동적이라 말한다.
배가 들어오면,
뱃장안에 든 멸치를 퍼 내야하기 때문에, 힘쓰기전에 우리집 문을
두들겨, 빵과 우유를 사가야한다.
겨울 멜이 들면, 나는 밤새 가게 문을 열고,
부두에는 환하게 불이 켜진다.
선원들은 물론,수협직원, 상인들, 젓갈 담는 사람, 소금 나르는 사람,대형트럭 운전기사,항공화물차까지
찬 겨울 새벽, 부두엔 허연 입김으로 후끈해진다.
밤새 문을 열고, 나는 꾸벅꾸벅 졸지만
부두에 바쁜 발자국 소리 울리고,
멜비늘은 쓸어도 쓸어도 다시 와 쌓이고,
불어오는 바람엔 온통 멜냄새 가득한 멜철이 좋다.
멜비늘은 돈비늘이고, 멜냄새는 희망의 냄새다.
겨울내 힘들었던 마을 사람들,
학비 걱정 덜어내는 마음 편한 냄새다.
나가서 멜 한그릇 얻어다 아침엔 멜국이나 끓여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