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포찻집에서 만나자고 했었다.
그것도 12월 마지막날 정오에.
경포찻집이 어디 있느냐는 그의 물음에 나는 깔깔 거리며 그곳도 모르느냐고 했었다.
그야물론 강원도 경포대 해변이지 어디긴 어디냐고.
그 넓은 곳에서 어떻게 만날수 있느냐는 그의 물음에 나는 아무렇지도 않게 대답을 했다.
왜 만날수 없을것 같으냐고.
그는 갈때 무엇을 타고 가느냐고 물었고 나는 관광버스를 타고 가겠노라고 했다.
그는 같이 가길 원했지만 나는 혼자 가길 원했다.
무슨 드라마같이.
올수 있을지 궁금 했지만 나는 버스에 몸을 실었다.
굽이굽이 대관령을 지나고 겨울풍경을 차창 밖으로 날려보내며 나는 혼자의 여행을 즐거워했다.
왔을까?
이미 많은 버스들이 많은 연인들을 바닷가 모래 사장에 내려놓고 있었다.
나는 겨울바다를 좋아했다.
아무도 없는 겨울바다를!
화려함이 숨어버리고 수많은 추억들을 들어삼킨 바다의 몸부림치는 파도를!
아니 나는 겨울바다의 고즈넉함을 사랑했다.
추억과 새로운 기다림으로 몸부림치는 그의 울부짖음을!
사각거리는 모래밟는 소리, 밀려왔다 밀려가는 파도의 부서지는 소리를 들으면서 시계를 보았다.
정오를 가르키는 초침을 보면서 오히려 그가 오지 않았음에 안도감을 느끼면서 차라리 잘 되었다는 생각을 했다.
여러방법으로 그는 내게 청혼을 했고 나는 그가 싫지는 않았지만 그의 청혼을 받아들일 수 없는 내 처지를 고민 했어야했다.
그는 평범한 은행원 이었고 나도 그처럼 평범한 은행원 이었다.
그가 나를 사랑하고 있다는것을 내가 알수있었던 것은 그의 친구를 통해서였고 그의 초췌한 모습을 보고 확인을 할수 있었다.
나를 향한 그의 마음가짐은 나를 부담스럽게 만들었다.
나는 결혼을 할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왜냐면 내가 가장아닌 가장 이었으니깐.
발밑으로 밀려드는 파도를 그대로 느끼면서 끼루룩 끼루룩 날고 있는 물새의 자유로움을 부러워했었지.
다행히 내가 탄 버스는 다른 관광지를 경유 해야하는 탓에 경포대를 뒤로 했다.
그는 내게 떨리는 그리고 실망스러운 느낌으로 전화를했다.
왜 오지 않았느냐고.
그도 왔었다.
아무도 없는 경포대를 버스를 탈수없어 친구의 차를 빌려서 달려왔노라고 했다.
이미 모든 관광버스가 사라지고만 텅빈 경포대 모래벌판을 이쪽끝부터 저쪽끝까지 해가 수평선으로 숨어들때까지 헛된 기다림으로 그렇게 있다가 왔노라고 했다.
그리고 그는 결혼을 했다.
아프디 아픈 추억을 경포바닷가에 묻어둔 그는 그이후로 강원도쪽으로
는 한번도 여행을 안한다고 했다.
나도 그를 사랑했었다.
하루에 3번씩 안부를 묻곤하는 그를
그의 따스한 인상과 그의 다정한 음성을 그의 따스한 배려의 마음씨를 그의 나를 향한 참된 사랑을 나도 사랑했었지만
그렇게 그를 먼저 보낸후 나는 아주 많이 힘겨워했었다.
나의 가난함을 감싸주었고, 나의 자만심을 감싸주었고 나의 부족함을 그는 채워주었는데.
그와 나는 이렇게 겨울 바닷가의 여행을 홀로 하면서 각각 다른길을 걸었다.
수많은 세월이 지났다.
몇번의 겨울이 오고 갈때마다 나는 경포대를 그리워했다.
겨울바람이 휘몰아치던 그때, 사각거리던 모래사장,
차마 잡고 싶어 몸부림치면서 결국 잡을수없어 밀려나는 파도의 몸부림,
다시 그를 만날수 있다면 그때는 한번도 표현을 못했던 말을 하고싶다.
이제 중년의 나이에 접어든 그는 어느 가정의 따스한 아버지로 변해있겠지!
나 또한 아이들의 엄마로 이렇게 먼 그리움을 꺼내보며 중년의 아줌마로 변해있음을 그도 기억 해줄까 몰라!.
그리고 이렇게 찬바람 부는날 경포대 해변을 나처럼 그리워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