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버작가

이슈토론
시어머님이 하신 김치를 친정에 나눠주는 일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배너_03
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조회 : 608

마흔여섯번째의 생일날에


BY 잡초 2003-01-27

" 내일은 미역국을 끓이세요 "
사모의 목소리에 난 주방에 대고 소리를 친다.
" 안돼이~ 차라리 모레 끓이자구여~~~~~ "
" 왜요? 그날이 무슨날인데요? "
" 무슨날은요? 바로 순디기 생일이지요 "
농담처럼 흘리듯 말을하고는 퇴근준비를 서두른다.

딸아이도
친구부모님이 제주도에 가셨다고 친구집에서 며칠있다온다며
옷 보따리를 싸 갖고 나갔고.
불꺼진 깜깜함이 너무도 을씨년스러워 잠시 대문앞에서 주춤거려본다.
초롱이녀석은 주인네가 왔다고 대문을 긁으며 낑낑거리고...
그래, 너라도 날 반기어 주는구나.

휭덩그레한 집안에...
난 보일러의 온도도 올리지 않은채
딸아이의 침대속으로 파고든다.
그냥 전기장판의 온도만을 올려놓은채
이불을 머리끝까지 올려본다.

음력 크리스마스.
난 예수님과 무척 친분이 있다고 항상 너스레를 떨어왔는데...
내가 이 험한세상밖으로 삐죽이 얼굴을 내민 날이다.

어제는...
동료들을 태운차가 도착을 하면서 분명 쉬겠다고 한 사람이 반가이 손을 흔든다.
왜 나왔냐는 내 입모양의 질문에 그녀는 그냥 배시시 웃을뿐.

아침 청소가 거의 끝나갈 무렵.
아침밥 먹자는 소리가 나를 잠깐 흥분을 시킨다.
언제부터인가 나는 먹는것에 목숨거는 가벼운 아지매가 되 있었고
그저 한술의 밥이라도 악착같이 목구멍에 밀어넣는다.

고기를 담뿍 넣은 미역국에
상 한가운데에는 케?揚?덩그마니 놓여있다.
" 뭐시래? 웬 케크? "
휘등그레 눈을 뜨는 내게 아까의 그언니가 ( 여기서는 나이불문하고 모두 언니라 칭한다 )
" 언니 몇살이야? "
묻는다.
" 내나이? "
잠시 버벅거리던 나는 마흔넷이라고 대답을 한다.

처음... 이곳에 들어왔을때 나이를 묻기에 그냥 조금 줄여서 말을 했었다.
그랬기에 갑자기 물어오는데 당황할밖에.

마흔네개의 초를꽃고 불을키더니 노래들을 부른다.
" 생일축하합니다, 생일축하합니다~ 사랑하는 순디기언니..... 생일축하합니다 "
이어서 터지는 폭죽.
가슴이 잠시 먹먹하다.
눈도 따끔거리는듯 하고... 코 끝도 짠~해오고...

입으로 불어 촛불을 끄고 난 그들에게 감사함을 너스레로 표현한다.
축하한다는 인사와 함께 그네들은 나를 에워싸고
" 언니, 놀랬지? "
한꺼번에 묻는다.

농담처럼 한 내 한마디를 지나가는 동료하나가 들었고.
그 동료로 인해 다른 사람에게도 전달이 되어
그네들은 준비를 한것이었다.
원래는 오늘이 생일인데 오늘 한사람이 부득히하게 쉬게되어
전날인 어제로 땡긴것이고.
즈이들끼리 모여 계획을 세운것이었다.
분명 사모는 고기없는 맨 미역국을 끓이라 할것이니.
주방에서는 고기담당이 썰고남은 자투리고기를 준비하고
홀에서는 케?揚?준비해라.
점심에는 칼국수를 준비하고 저녁에는 보쌈을 짱박아서 물컵에다 소주한잔씩 하자.

그들은...
날 위해 그렇게 준비들을 한 것이었다.
쉬겠다던 사람도 날 위해 출근을 하고
날위해... 그들은 머리를 맞대고 의논들을 하고 마음들을 써준것이었다.

맛난 미역국에 맛난 사람의 정까지 가득담아 먹고나니
새삼... 삶이라는게 그렇게 버거운것만은 아니구나 싶다.

오늘은...
퇴근을 해 집에오니 아침끼지 없던 딸 녀석이 선물보따리를 내어놓는다.
유머러스한 털 모자와 악세사리 귀거리.
그리고 삐뚤빼뚤한 글씨의 편지한장.
( 녀석의 필체는 날 닮았는지 악필이다 )

그랬지.
내겐 딸이있었지.
시댁도 친정도...
그 어느 누구하나 기억해 주지 않는 내 생일에...
가까이의 동료들과 딸아이...
너무 감사하고 감사하다.

지금은.
살풋살풋 눈까플이 내려앉는데
난 내게 말을 해주고 싶다.
" 어이, 순디기 생일축하하네. 열심히 사시게.
내년 생일에는 지금보다 더 축하받고 감사할일 많길 바라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