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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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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안에남자


BY 밥푸는여자 2003-01-25



십대에 내가 좋아하는 남자들은 모두 책속에 있었던것같고
이십대에 내가 좋아하는 남자들은 모두 영화속에 있었다.
누가 뭐라하지 않았는데도 책속에 남자든 영화속에 남자든
기대를 하고 보는만큼 마지막에는 그 실망감과 절망감으로
남자를 보는데 무기력감이 생겼고 우스운 것은 언제부턴가
나는 영화속의 주인공보다 조연에 내 마음이 머물곤 했었다.

아마도 그렇게 된 이유는 멋있어 보이는 그 허상의 사람 중에
아무도 내 속에 부는 바람소리를 들어주지 않았으며 나의 가슴을
녹여주질 않았다는 내 스스로의 억지 소리 때문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들은 영화속에서 처럼 분위기 있는 목소리 한번 들려주지 않았고
늘 자기안에 주어진 역할 밖으로 벗어나지 않았다. 영화가 끝나고
멍하니 앉아있어봐도 그들은 그저 필름속으로 숨어들어가 다신
얼굴을 비쳐주지 않았고 책을 덮고 아무리 기다려도 활자속에
귀신처럼 숨어버려 아무도 내게 와 손 내밀어 주지 않았다.

더 징한 것은 내가 만난 현실속의 남자 ...
그들에게서는 어떤 감동도 느낄수 없었다.

그러던 어느날 드디어 정말 현실속에서 남자를 보았다.
하얗고 긴 ..아주 섬세한 손을 가진 남자. 그가 손을
움직이는 방향을 따라 내 눈은 따라갔다. 그의 낮은
음성을 따라 내 귀가 세워져갔다. 매 주일 거듭거듭
난 그 손만 따라 다녔다. 그가 손을 높이 들때면 더 없이
파리한 손가락이 내 길고 깊은 호흡속으로 들어왔고 그의
음성이 묵직히 내려앉을때면 혼돈의 늪으로 빠져 들었었다.
그러나 그도 내게는 남자가 아니었다.

내 남자는 아니여도 내 안에 남자로 자리잡은 환영이 있다면
안소니 퀸....25시란 영화 마지막 장면이 늘 눈가에 환영처럼있다
사진기 앞에서 그의 기가막힌 표정의 변신... 아마도 그것은 그의
불가항력적인 삶이 그의 눈속에 있었기 때문이리라.

멋지고, 분위기있고 내 가슴을 콩당거리게 했던 그 어떤 배우보다
'노틀담의 곱추' 에서 못생긴 곱추 안소니 퀸을 좋아하게 되는것은
생활속에 철학을 발견해가는 나이가 되었기 때문이리라.

남자..
더 이상 허상의 것을 추구하지 않는 나이가 되면서도 가끔씩
내 안에 날 흔들어 깨우는 안소니 퀸의 눈빛이 살아있음은
여자..
칠십에 되어도 그 본질이 살아움직이는 존재이기 때문이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