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움
어둠이 내린 여름밤에 "졸업"이라는 제목을 단 메일 한 통이 북경으로부터 날아들었다.
지금은 북경에서 살고 있는 고등학교 후배인 E는 남편이 남쪽군사도 진해 oo군함의 함장으로 오게 되었으며
귀국을 서두르고 있다는 내용과 함께 북경대학원 졸업식날 찍은 가족사진 세장이 첨부되어 있었다.
학사모를 쓰고 안경 낀 온화한 E 남편의 모습.
잘 자란 남매의 따뜻한 얼굴.
여고때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이 동그래서 다정한 그녀의 얼굴.
마음이 흡족하니 자랑스러웠다.
언젠가 그녀가 보내준 메일을 프린트해둔 것이 있었었나.
어제는 책상을 정리하다가 흩어진 종이들 안에 잘 접혀진
그녀가 보내준 편지를 읽고 가만 눈으로 웃었다.
. . .
그리움이 깊어져 5월도 가네
자전거를 타고 시장을 다녀오며
여전히 느릿느릿한 이곳 사람들을 보며 가끔 언니를 생각한다.
글을 쓰는 모습이 아름다웠을 언니를... "
귀중하다고 생각했었는지 아니면 잃어버린 꿈에 대한 그리움 때문이였는지,
예전의 내 모습을 기억해주는 사람에 대한 감사함이였는지
E의 메일을 받는 일은 늘 즐거웠다.
지난 겨울 소식이 끊긴뒤로 무척 궁금해 했는데,
소식을 전해 오기만을 애써 기다리고 있던 터였다.
바다가 있는 B시에서 전라도 깡촌까지 나를 ?아온 그 여름을 우리는 두고두고 그리워 했다.
한적한 시골이였고, 장마통이였고
이따금 그악스럽게 빗줄기가 퍼부었다가 말끔하게 개었다가.
비가 그친 말끔한 신작로 길을 맨발로 걸으며
꽃뱀의 꼬리같은 바람을 일으키고 가는 연초록 벼논을 하염없이
바라보기도 했다.
땅맛에 길들여져 반짝이는 연두빛으로 잘 자란 벼들을 바라보며 가만
한숨을 놓아두기도 했었다.
수평선이 있는 바다로만 눈을 먼데 두는 것이 아니였다.
집뒤곁 도라지밭엔 보라색과 미색의 도라지꽃이 성시를 이루었고
도라지밭 가장자리엔 키 큰 접시꽃이 담장을 넘어서서 먼 산을 곁눈질 하며 함빡함빡 웃고 있기도 했었다.
바라보기만 해도 신맛이 혀를 팽그르르 감고 도는 포도넝쿨이 몇 개 있었고 가시가 있는 석류나무가 있었고
담옆의 이웃 뒤곁엔 돌배가 있었고 , 나도감나무,너도 밤나무가 자라고 있는 땅이었다.
비가 오면 으레껏 안방 문까지 들이치는 허름한 집의 슬레이트 지붕에서 쉴 새 없이 흘러내리던 빗물.
낙숫물 아래 줄줄이 이어 내 놓아지던 양동이 , 세숫대야.그리고 갈색의 다라이 그릇에 고인 빗물을 받아 걸레도 빨고 흙이 튄 젖은 슬리퍼나 고무신도 헹구어내고 비바람이 지나간 토방도 닦고.. 논이나 밭을 다녀온 뒤 젖은 옷도 빨았던 단물이라고 배웠던 빗물.
지붕에서 하염없이 떨어져 내리던 낙숫물을 손으로 받고 있으면
얼굴이나 옷이나 가슴으로도 사정없이 튀어올라 빗물 튄데선 사마귀가 난다는 속설을 믿었으면서도 물사마귀가 얼굴가득 하거나 말거나
손바닥을 벌리고 지붕에서 떨어지는 빗물을 받았던 그 손이 지금 자판을 두들기고 있다.
그 여름밤 그녀와 둘이서 바람에 날려오는 비를 막다가 다시 마당을 긁어파는 줄기찬 빗줄기를 하염없이 바라보던 그 즈음 어둠을 뚫고, 차가 끊긴 시골길을 비에 젖어 품바 노래를 부르며 지리산 등반을 마치고 들어서던 남동생.
E와 남동생은 금방 친구가 되었다.
그녀는 B시의 여대 학보사 기자였고 남동생은 육사 3학년이였었다.
그들은 한동안 친구로만 지내다가 헤.어.졌.다.
헤어진 뒤 집으로 온 동생의 짐속에서 꽃도 십자가도 없는 무덤부터 시작해 그녀의 싸인이 된 책들이 쉴새없이 쏟아져 나왔다.
. . . . .....
어머니는 이따금 지금도 여전히 E를 그리워하신다.
이젠 이름도 잊혀질법한 10여년의 세월도 훌쩍 흘렀는데...
간간히 걔 누구였지? 물으신다.
1주일을 머물다 간 그녀가 어머니 가슴에 남겨놓은 마음 씀씀이에 잠시 꿈을 꾸었던 며느리감으로, 그리고 나보다 나이가 세 살 작았으니 막내딸로 보는 마음이 아직 어머니 가슴에 살아 있다.
나는 E가 남동생과 친구로 지냈긴 했다지만 동생으로 인해 마음 다친 일들이 없었기를 진심으로 바랬다. 있었다손치더라도 나는 영원히 아무것도 모르는 일로 살고 싶다.
듣지 않았으니 모르는 일이고 내가 모르는 일이니 그들에겐 아무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가끔 나는 그녀가 내 식구가 되지 않았던 것을 고마워하고 감사한다.
평생을 두고 갈 친구로 남아 있으니 얼마나 다행인가...
아무리 서로간 잘 하고 살았더라도 씨줄과 날실로 얽히게 되었다면
지금보단 더 그립고 행복하진 않았을 것이다.
적응하는데 아이들이 힘들어 할까봐 아이들과 E는 언제까지 일지는 모르나
중국 북경에 그대로 남아 있겠다는 추신이 남겨져 있다.
잠시 여름에 이곳을 다녀가겠다는 말과 함께.
나는 내가 사는 서울이라는 땅에서 E를 만나면 어머니땅에서 가져 보았던 정서는 아니더라도 그와 좀 비슷할지도 모르는 간결한 내 삶의 마당에 그녀를 초대하여 몇 밤을 부비리라 꿈을 꾸고 있다.
중국을 떠나기전 어느 겨울 그녀가 왔을땐 나는 너무 가난하여 그녀에게 아무것도 대접하지
못했다. 보내놓고 돌아서서 눈물을 훔쳤던 것 밖엔 ...
반가운 얼굴을 만나면 처음 어떻게 말을 하면 좋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