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 새벽..
창문을 열었더니
어머나!
세상이 온통 새하얀 옷으로 갈아 있었어요.
길 건너 야산 키 작은 소나무도
키 큰 꺽다리 소나무도 새하얀 고깔모자를 선물 받았나 봐요.
똑같이 머리에 쓰고 있네요.
눈 싸인 7번국도 위엔 차들이 엉금엉금 걸음마를 하네요.
어제 포항에서 만남의 약속이 있어서 밤늦게 귀가했는데
하늘에 달도 별도 어디로 나들이 갔는지
온통 잿빛으로 흐려있더니
밤사이 우리 넓은 마당에 흰눈이 소복 쌓였네요.
이곳은 바다를 끼고 있어서 그런지 차가운 겨울바람은 대단하지만
겨울손님 눈은 잘 찾아오지 않지요.
행여 오시더라도 잠간 휘날리다가 다른 길로 재촉하걸랑요.
참 모처럼 만나는 눈 손님이라 반가운 마음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반가운 마음도 잠시..
‘이 넓은 마당에 쌓인 눈을 어떡해.
손님들이 주차하는데 미끄러워서..’라는 걱정이 앞서니
황금에 자연의 아름다운 마음마저 앗기는 속물같아서 그러네요.
“따르릉..따르릉..”
이른 아침부터 웬 전화가..
“현이 엄마.나 대구 박 선생 댁이야. 그사이 별고 없지요? “
“어마.. 박 교장 사모님 아니세요? 어찐 일로?”
“현이 엄마. 잊고 있나요? 오늘 회 주문한거...
대구에는 어제 밤사이에 눈이 너무 많이 와서 랑
출근하는데 야단났답니다. 행여 교통이 두절 될까봐...“
맞다.
오랫동안 ...
우리가게 단골이신 박 교장 댁 큰 아들 결혼식을 지난 토요일 했고
피로연에 손님들에게 대접할 회를 부탁했기에
결혼식도 참석할 겸 직접 배달해 드렸는데
그 자리에서 신혼부부가 돌아오는 목요일에 맞추어서
양쪽 집안 식구들이 먹을 양의 회를 주문했는데 깜박 잊어버렸으니..
후후후...
‘잊지 않고 있다’고 얼른 둘러 되기는..
눈은 많이 왔지만 교통은 괜찮을 거라고...대답을 하고
터미널에 버스가 다니는지 전화를 했더니
이를 어째...버스가 두절이라네요.
신부 쪽 상각이 오시는데 보낼 줄 회를 믿고
별다른 음식을 준비 안 했다고 비행기로 공수하더라도 꼭 보내라고 하니..
흑 흑흑..
하는 수 없이 어판장 일 마치고 온 아들놈에게
포항에는 대구로 가는 버스가 정상이라고 하니 좀 부치고 오라고하니..
참말로 기가차고 어이가 없어서...
“눈이 펑펑 오는데 하나 아들 죽음 길 산보 보내느냐?”고 고함을 꽥~~
그 소리 듣는 순간..
“그래 알았다. 죽어도 어미가 가야지, 가야하고말고..”
하늘아래 하나뿐인 지어미는 왜 눈물이 핑 돌고 가슴이 멍할까요?
꼭 황금을 벌어들인다는 욕심이 있어서가 아니고
우리 가게를 찾아주시는 고객과의 약속을 지키고 싶었고
위험스러운 눈길이라도 주문한 회를 보내드리고 싶었습니다.
포항 가는 길목은 아직도 흰눈이 펑펑 ..
도로의 눈이 뒤범벅이 되어 차선구별도 어렵고
앞차들의 튕기는 눈가루로 사시거리도 희미하고..
걸음마 걸음 속도 80km 천천히..
포항터미널에서 책임완수를 하고 나니 기분이 짠~좋습니다.
“그래..아들 넘아. 퍼붓는 눈길이 무서워서 못 간다고?
그럼 네 엄마는 위험한 길 가도 괜찮고?????'
'엄마는 엄마가 좋아서 선택한 길이잖아!'
'뭐, 뭐라고? 나쁜 놈아!''
집으로 돌아오는 길목은 눈도 멈추고
햇볕이 얼굴을 내밀까말까 숨바꼭질하고 있네요.
가을 추수 끝난 빈 들녘에 하얀 눈이불을 덮은 것 같아서
얼마나 아름다운 풍경을 보여주는지..
꼭 한 폭의 그림을 감상하는 것 같네요.
아들한테 섭섭했던 마음도 잠시 순간...
흰눈이 녹으면서 내마음도 함께 녹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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