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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디언
썸머는 계속 되어야 한다
인디언
썸머라는 영화를 봤다.
멍하니
초점을 잃고 먼 곳을 응시하는 여주인공의 시선은 젊은
변호사의 감성을 뒤흔든다.
누군가
그랬던가 사랑은 교통사고처럼 갑자기 다가온다고
"죽고
싶어요라는 말이 어떤 사람에겐 살려달라는 말 보다 더
애절하게 들린다"는 남자.
똑같은
말을 들어도 그것을 받아들이는 사람의 깊이 만큼 사람
사이는 다가서는게 아닐까?
갑동을
주기 이한 억지 결론 같다는 강한 인상을 남기며 결국 그녀는
사형을 택했고, 눈물로 그는 그녀를 보낸다.
무죄
판결을 받은 재심후와 삼심 사이의 몇 일.
그
시간이 인생에서 그들에겐 인디언 썸머로 남으며
겨울의
찬 손님을 맞기 전 가을.
서늘함과
익숙해지려는 시기에 찾아오는 열정의 여름 햇살.
가을에
만나는 여름의 마지막 몸부림 인디언 썸머.
그건 너무도 미약해서 어떤 이는 지나가는 것조차 모를
수도 있다는
그
인디언 썸머는 그것을 바라는 사람들에게만 찾아온단다.
그렇다면
정녕 그녀는 그걸 바랬던 걸까?
폭력과
감금을 일삼던 남편의 마수로부터 탈출을 시도했던 그녀가
마침내 그런 기회를 잡고 사정없이 달려나갔지만
결국
아무 데도 갈 곳이 없다는 현실이 그녀를 주저앉게
만든다.
그렇게 길들여진 채 살아온 세월이 혼자서는 설 수 없는
그녀를 낳은 것이다.
갈
곳이 남편이 죽은 끔찍한 집밖에 없는 현실.
그녀에게
남은 건 죽음의 길 뿐.
그렇다.
부부싸움을 하고 나면 나가고 싶어도 갈 곳이 없더라는
아내들의 넋두리를 자주 듣는다.
철저하게 길들여져 살아가다 보면 안식은 결국 또 다른
감옥이 되는 걸까?
"나
오늘 안 들어올 꺼야."
하고
나가서는 어김없이
"진짜
나가려고 했는데 갈 때가 없더라."
하며
돌아오는 그처럼. 고맙기도 하고 애처롭기도 하고.
뭐니뭐니해도 돌아갈 곳이 이곳밖에 없다는 그 절실함.
자꾸만
살고싶어지게 하지 말라는 말을 남긴 채 그녀는 떠나는
자의 길을 택한다.
누구나
한 번 쯤은 인디언 썸머를 기다리지 않을까?
기다린다고
모든 게 오는 것은 아니겠지만 아직도 기대할 무언가가
남아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기다림은 행복함으로 바꾸어지는 게 아닐까?
나의
염원이 그런 시간을 부를 수 있다는 걸 난 아직도 믿는다.
새로운
시간에 대한 설레임.
단지
바라고 싶은 게 있다면......
왜
다른 사랑이어야만 하는가?
내
곁에 있는 바로 그 사람과 그렇게 첫사랑의 떨림으로 나를
이끌어 주었던
바로
그 사람과 또 다른 인디언 썸머를 설계해 봄이 어떨는지.
아직도
사랑이 남아있다면 서로가 바라는 새로움을 다른 곳에서
찾기보다는 서로에게 요청함이 어떨런지.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기꺼이 자신을 바꾸고자 하는 노력.
그
또한 더 깊은 배려와 사랑이 아닐까.
시간이
지나면 모든 것은 다 변한다.
하지만
그 변화의 방향을 서로 설계하여 맞추어 나갈 수 있다면
얼마나 멋진 일인가?
누군가
사랑은 두 사람이 한 곳을 바라보며 나아가는 것이라고
하지 않았든가
가을을
지나 겨울을 맞는다 해도 그와 함께 맞이하는 또 다른 날들을
기다리는 기쁨이 남아있다면
여름의
정열만큼 그 또한 가치 있는 시간이 아닐까?
이제
완연한 여름인가 봅니다.
조금
무거운 이야기죠?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이 참 다양한
것 같아요.
누가
그러대요. 돈도 안 되는 일에 뭐하러 그렇게 정열을 쏟아
붓느냐구요.
글세요.
전 그래요. 그냥 그렇게 할 수밖에 없는 운명 같은 게 느껴져요.
안
그러고는 못 살 것 같은
무언가로
인해 행복할 수 있다는 사실에 감사하기도 하구요.
다
여러분들이 주시는 행복입니다.
미흡한
글에 보내주시는 성원! 그 힘으로 또 하루를 엽니다.
<올 여름엔 사랑하는 이와 여기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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