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근시간이 얼마남지 않은 시간에 딸아이가 전화를 한다.
친구와 함께 서점엘 다녀오겠다길래 다음에 엄마와 함께 가자고 하니
아이는 자꾸만 엄마를 조르며 자기주장을 고집하는데
사무실에서 언성을 높이기도 그래서 일단은 내가 참는다.
대충 얼버무리고 전화를 끊고 보니 마음이 찜찜한데
그냥 그렇게 시간은 흐르고 퇴근을 해서 집에 돌아와 보니
역시나 아이들은 집에 없다.
5시 퇴근은 그래도 나에게 무척이나 여유로움을 준다.
아이들이 없는 틈을 타서 나는 재빠른 손놀림으로 청소를 하기 위해 팔을 걷어 부친다.
청소를 마치고 여섯시가 넘어서도록 아이들은 돌아오질 않고 있다.
무슨일이라도 있는 것인가 마음속으로는 별의별 생각들이 스치고 지나간다.
이런것이 부모마음인가 싶기도 하고,
한편 아무일 없겠지 스스로 위안삼아 생각을 바꾸기도 하면서
그렇게 저녁준비를 하고 있을 즈음에
누군가 초인종을 누른다.
분명히 우리 아이들일꺼라는 생각에 00니?
딸아이의 이름을 부르며 나가 보니
두 아이는 얼굴이 벌개가지고 종이컵 하나씩 손에 든채 들어온다.
아이들을 앉혀 두고는 조목조목 물어보니 집근처의 백화점에 있는 서점엘 갔단다.
걸어가기에는 제법 먼 거리라서 난 늘 그곳엘 갈라치면 차를 타고 갔었는데 ...
아이들이 사 갖고 돌아온 것은 달랑 책 한권이 전부였다.
평소에 어른들께 용돈을 받으면 으레껏 제 엄마에게 저금을 부탁하며 맡겨두곤 하는지라
갑작스런 외출에 돈이 있을리 만무하였던 것인지
길거리에서 파는 먹거리들에 출출한 시간 아이들은 제법 유혹을 느꼈을터인데
감자를 구워 파는 포장마차에서 셋이 똑같이 한사람당 3개씩을 달라고 하니
주인 아주머니는 아이들의 의리를 칭찬하시며 한접시를 더 주셔서
맛나게들 먹고서 돌아왔단다.
한번도 저희들끼리는 백화점엘 가 본적이 없는 아이들 ...
아마도 눈이 휘둥그레 져서 이리 저리 두리번거렸을 아이들이 한편 우습기도 하고,
부모의 그늘에서 조금씩 벗어나는 아이들의 성장이 대견스럽기도 하다.
딸아이와 오늘의 외출에 대하여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아이는 엄마와 함께 하는 외출과의 차이에 대하여 많은 생각을 하게 되더란 말을 한다.
우선 아이들끼리 가니 뭐 하나 먹고 싶은 것이 있어도
호주머니속의 달랑거리는 돈을 헤아려야 하고,
그래서인지 가는곳마다 엄마생각이 났었다며
아이는 내심 따뜻하게 차려낸 엄마표 밥상에서 재잘거리며
오늘따라 유난스레 맛있게 밥을 먹는다.
친구와 동생과 함께 간 외출에서
아이는 부모의 품이 얼마나 따스한지
추운 겨울바람 맞으며 조금은 느꼈다 하니
책한권 사러 추운날 먼 곳까지 걸어가는
괜히 손해 보았다는 느낌은 끝내 아이에게는 말하지 않고
나 혼자만의 생각으로 그친다.
무사히 잘 돌아왔으니 다행이지만,
앞으로는 엄마와 함께 가면 더 좋을 것이라는 말을 하며
아이의 눈을 쳐다 보니
지갑사정을 생각하며 못 먹고 돌아온 아이스크림에 미련이 남는 듯 보인다.
때로는 부족한 듯 한 것이 아이들에게는 더 낳은 결과를 가져다 줄 수도 있겠구나 ...
항상 부족함없이 채워주는 부모이기 보다는
아이들 스스로 절제하고, 참아낼 줄 아는 마음가짐을 가질 수 있도록
부모는 조용히 지켜볼줄도 알아야 할꺼라는 생각이 든다.
실내의 따스한 기운에 복숭아처럼 발그레해진 아이들의 볼을
꼬집어 주며 도란도란 저무는 겨울저녁이 한없이 아늑하다.
저 아이들에게 내가 무엇을 해 줄수 있을까를 생각하는 일보다
어쩌면 더 많은 것을 느끼고 터득하여 스스로 바람직한 사고를 정립해 가도록
더 많이 기다려 주는 일, 관심갖고 지켜보는 마음이 필요한 것은 아닐까?
아이들의 눈으로 바라본 세상이 좀더 따스하고, 행복한 느낌일 수 있었으면 ...
하는 바램으로 잠든 아이들의 얼굴을 어루만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