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방을 들락거린지 두달이 되어간다.
이제 이웃 아줌마들이 내 글의 애독자가 다 되었다.
그래서 아주 사적인 이야기를 쓰기가 약간 거북스러운 것 빼고는,
솔직히 작가나 된듯이 기분이 좋다.
요즘은 만나면, 으례 저번 글이 어떻더라는 평을 하기도 한다.
그 애독자 중 한사람이 내 딸 친구의 엄마다.
연애 편지 가득 담긴 추억의 시집을 본 일도 있으니, 그 언니도 예전엔 글도 많이 썼던 것 같다.
부두가에서 식당 아줌마로 살아가니,글 쓰는 일보다는 밥하는 일이 더 능숙해졌을 것이다. 그런데 그 식당 이름이 '향수식당'이다.
나는 그 이름을 볼 때마다 그리움의 '향수'일까? 향기나는 '향수'일까? 생각해 보지만 알 길은 없고, 둘 중의 어느 것이든 부둣가의 작은 식당 이름치고는 너무나 멋들어지다는 생각이 든다.
저녁을 먹고나서 그 집에 잠깐 들렀다.
네살 짜리 딸은 잠들어 있고, 우리 딸과 같은 반인 아들은 책을
읽고 있었다. 독후감 얘기 끝에 또 내 글 얘기가 나왔다.
"그런데 왜 저 글은 안 올리는거야?
저 글 올리면 참 좋아할 것 같은데...."하며
내가 선물한 액자를 가리켰다.
그 액자.....
작년인가, 스승의 날 행사로 학부모들과 선생님들이 같이 마라도에
갔다. 나는 멋있게 남편의 수동카메라를 들고 갔고, 오랜만의 외출에 들뜬 다른 엄마들은 카메라 가져오는 걸 잊었다.
아마 아이들 데리고 갔으면 다 챙겨갔을텐데, 엄마들은 자기 자신을 위해 뭔가를 준비하는 것은 소홀하다.
나는 온갖 포즈를 취하는 전 학년의 선생님과 학부모들을 찍어댔다.
그리고 사진관에 사진을 찾으러 갔을 때, 충격!
사진은 두통의 필름 중 단 두장이고, 나머지는 검은 원판
그대로였다. 초등학교 학부모에게 몰매 맞을 위기였다.
생각다 못한 나는, 그 때의 몇 장면을 남편에게 그리게 했다.
(' 내남편'을 읽어 보신 분은 아시겠지만)
그리고 그 그림을 배경으로 '마라도에서'라는 글을 써서 액자를
만들어 나눠줬다. 반응은? 사진이상이었고.
그 액자는 우리 동네 모 노래방에 가도 걸려 있고, '향수식당'에
가도 걸려있다.
그런데 정작 내 것은 만들지 않았고,저장해 놨던 파일도 날아가버렸기 때문에 '마라도에서'라는 글은 올리지 않은게 아니라
올리지 못했다.
"이것 가지고 가서, 아컴에 올리고 꼭 돌려줘."하며 내주는 액자를 가지고 돌아 왔다.
한참 지나 예전에 쓴 글 읽어 보니,쑥스럽긴해도
마라도의 추억이 떠오른다.
그 언니 또 이 방에 와서 확인할 것이 뻔하므로 여기에 옮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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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라도에서
나 이제 삶의 무거운 짐
펑퍼짐한 엉덩이
마라도 작은 초원 위에 내려 놓는다.
코 끝을 스치는 건 땀냄샌지,풀냄샌지,혹은 바다 냄샌지.....
휴-하고 한숨 쉬고 고개드니
어느새 피곤한 얼굴의 아줌마가 되어 있는 나.
언제 여기까지 흘러 왔을까.
심고 가꾸지 않아도 튼튼히 손 잡고,손 잡고 뻗어가는 마라도의
잔디들
저 건너에 두고 온 우리 집 꼬마들 같다.
아침부터 밤까지 뛰놀아도 지칠 줄 모르는
"엄마"하고 날마다 내 삶을 깨우는 아이들.
섬을 지켜내는 건 단단한 바위
아이들을 지켜 내는 건
나, 어머니.
사람들은 더 넓은 땅으로 나가고 빈 집만 늘어가도
언제나 그 자리에서 말없이 서 있는 어머니같은 땅.
어릴 적 꿈이 사라진 빈 자리에
이 초록의 작은 섬 옮겨 놓고
가슴에 꼬옥 품고 살아 가야지.
내 아이들에게
세상에서 만나는 사람들에게 아름다운 섬이 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