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제가 여길 자주 오네요.
여길 오면 반갑다 맞아주는 이도 그닥 없는데
저는 여길 오면 좋습니다.
아무도 제가 누군지 모르시고
저또한 당신들을 모르지만
서로에게 무슨 일이 있는지 친언니보다 잘 알고 있는 사이,
그게 우리들 사이니까,
저는 여기가 차암 좋네요.
사실, 오늘은 여기 안오려고 했어요.
제가 많이 슬프거든요.
슬프자 마자 여기 떠올랐어요.
무슨 기사거리 발견한 노련한 기자마냥
아, 나 에세이 꺼리 생겼네,
하고만 내 자신이 참말 역겨워서요.
글쓰는 게 고만 역겹네요.
눈이 짓물러 쓰리고 아픈데
이렇게 뭐라 끄적거리고 있어요.
삶과 죽음의 경계는 무엇인가요?
산자와 죽은 자의 경계는 무엇인가요?
참으로 사는 자와 참으로 죽는 자의 경계는 무엇인가요?
아버지가 암선고 받으시던 날,
저 처음으로 새벽기도라는 걸 갔었어요.
뜬 눈으로 날새다 생전 가본적 없는
동네 교횔 갔었죠.
기도도 하고, 찬송도 부르고
아버지 살려주십사 절규도 하고....
그러다 모기가 너무 많아서
그냥 왔어요.
오늘 언니 말로는
복수가 차시고 간으로도 암이 전이가 됐다고,
이젠 정말 얼마 못사시려나 부다,
눈이 붓도록 울고 또 울고
그러다 우리 둘째, 엄마, 배고파요.....밥 줘요.
메추리알 잔뜩 삶아
셋이 앉아 까먹으며 하하 호호.....
고 일때, 비가 억수같이 퍼붓던 날,
학교 정문 앞, 초라한 모습의 아버지가
우산 받쳐주러 기다리고 계셨지요.
친구들과 정담하며 하교하다
그런 아버지 모습에 부끄럽고 화나고,
아버지 외면하고서는 냅다 한걸음에
집으로 돌아와 펑펑 울었어요.
저는 뭐 그런 딸인걸요.
아버지를 부끄러워 하는 딸.
당신이 남들보다 험한 일을 한다는 그 이유하나로
아버지를 부끄러워 하는 딸인걸요.
알량한 시집이란 걸 와서
더더욱 아버지, 어머니 외면하고 살았네요.
자식 낳고 살아보니 ,
별수 없이 부모 마음 깨치게 되면서도
곤궁한 형편이라는 제법 편리한 변명으로
이날 이때껏 용채 한번 못드리고
뻔뻔스레 살았었죠.
아버지, 나 용서해 주실라우?
마음 깊이가 앝은 자식 용서해 주실라우?
우리 아버지 ,저 같은 자식 용서하고도 남으실거예요.
하지만 나는 나를 용서 못하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