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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에 얻은 사랑


BY 박현식 2000-07-10

가을에 얻은 사랑

어느해 늦가을 가을걷이가 끝나갈쯤
함께 일하는 열 남짖의 한무리는 작은 버스 전세놓아 지리산 한 귀퉁이를
찾아 들었다
토요일 오후 일과 끝내고

하동 쌍계사 어귀 산밑 조용한 작은 마을 이였지
함께한 동료의 고향집
그곳엔 늙으신 두 내외분께서 우릴 반갑게 맞아 주셨다

미리 일러 놓은터라
덕석 펴 차린 저녁상은 성찬이였다
온갖 산나물에 염소 요리까지
한 마리 염소는 우릴 위해 재물로 붉은피 토했겠지

도심에서 찌든 일행은 맑은 가을밤 그 풍성함을 느끼면서
정겨운 얘기의 꽃을 피워갔다
술과 더불어

술과는 인연 맺지못한 난
한켠에 누워 맑디 맑은 가을 밤하늘속 별만 헤였다
흐르는 유성의 꼬리 ?으면서

몇순배나 돌았을까
취기는 저마다 오르고 흥은 절로 겨워갔다
더 나은 흥을 얻으려 아랬마을 화개장터로 간다
두분 어르신께 고마움을 전해두고

숙소를 정한 여관 지하의 작은 술집
마치 전세라도 낸 듯
우리들만 차지였다

권하며 받으며 오가는 술잔속으로 서로에게 애정을 더해간다
술 겁나 윗도리 걸어둔채 슬며시 밖으로 나오고 만다
섬진강턱에 웅크려 앉아 물소리만 들리는 강심을 뚫어지게 바라볼뿐
그렇게 한동안을....

강속에서 작은 소리가 들려왔다
사람들의 소리
건너편 구례 땅에서 하동으로 넘나드는 사람들의 소리
작은 뱃속에서 예닐곱의 사람들...

쌀쌀한 가을 밤기운이 날 시려오게 할 쯤
내 곁엔 또 한사람이 웅크려 앉았다
『무얼그리 생각하시나요』
『아무 생각없이 그냥요 , 술이 겁나서』
그도 아무 말없이 내 모습과 닮아갔다
한시각이나 그렇게 있었나 보다

난 한기를 느껴왔다
그도 내 한기를 느꼈는지 내 윗도리를 가져와 내게 주었다
『많이 추우세요, 난 포근한데』
『술기운이 있어 그렇겠지, 다들 어디 가셨나요』
『글쎄요』

둘은 일행을 찾기 시작했다
여관에도 인근 어디에도 보이질 않았다
불빛 한점없는 쌍계사쪽으로 올라갔다
있을만한곳이 그길가에도 일행은 보이지 않았지
어딜갔나
둘은 풀석 길섶에 앉아버린다
둘은 이런 저런 세상사를 주고 받았다
풀벌레 소리 들으가면서

난 또 추위를 느꼈다
작은 떨림까지
얘기는 끝없이 이어졌다
그의 말들속엔 뜻 모를 얘기도
종잡을수 없는 그의 마음도 읽는다
시각은 얼마쯤이나 되었을까도 잊은채

별들은 더 영롱해져 간다
깊은밤의 추위를 이겨나지 못할쯤
그는 나를 감싸 안아준다
엄칫 놀란다
전신이 굳어버린 듯
내 눈은 갈곳 잃어버리고 만다
한참을 그렇게

그의 온기를 느껴 받을쯤
내 그를 안아주었다
내 사랑인냥
별들은 보았으리라
우리의 입맞춤까지도

나를 되찾은 난 그를 내 발등위에 올려놓고
온길 되돌아 내려 간다
무어라 흥얼 그리며....

숙소엔 일행은 와 계셨다
잠잘 생각없이 빙둘러 앉아 오락에 빠져 있었다 취기를 머금은채
아무런 표정없이 한켠에 자리누워
잠을 청한다

잠못이루고 새벽을 만나고 말았다
코골음을 뒤로하고
햇살필 아침을 맞으려 동리 한바퀴 뒷짐져 한시각이나 걸었다
간밤을 생각하면서

조반을 들고
노고단을 향한다
낡은 버스는 까만연기 숨가쁘게 토아내며 지리산을 굽돌아 오른다
차창에 눈길 박아두고 말없이 차속으로 오른다
고개마루에서 노고단까지
곁에 사람두지 않고 혼자인체
잰 걸음으로 뒤?는 그를 외면한체

노고단에서 한 장 사진 만들때에도 그와는 반대편에 선다
내리는길 어디쯤에선가
그는 나를 불러 세운다
함께 걸었으면 좋겠다고

그냥 내버려 두었다
다소곳이 뒤따른다
말없이
무얼 말하려 함이였던가

내내 말없었다
여행 끝날 때 까지
일행의 성화에도 아랑곳 없이

그 이튿날 언제나 같이 일터인 그곳을 찾는다
서랍을 여니
낮설은 것이 보였다 갈색의 봉투
무얼까
그의 글이였다

나를 안 이후부터의 나에 대한 생각들을 담겨 놓았다
그 생각들에 대한 나의 생각을 적어 보냈다
다음날도
그 다음날도 그렇게

우린 마치 한 시인을 흉내라도 내듯이
많은 마음과 생각들을 주고 받았다
세해를 넘게
때론 찻집에 앉아
때론 바닷가를 거닐면서
서로에게 있는 것들을 보여주었다

내가 그곳을 떠니는날 그는 슬퍼 이틀날을 울어 지샜다
나를 위해 울어주는가
저 서러움에 울었는가
그 마음을 내 가슴에 담아갔다

그는 지아비 그의 가슴에 묻는날
통곡하는날
그는 날 붙들고 울어 가슴 아파했다
살아갈 날들의 두려움에
그의 두려움 앞에
난 그렇게도 작아 보였다
내 그를 위할수 없기에

우린 이제 먼 발치에서
서로를 말없이 바라본다
가슴아파 하지 않으면서

난 그를 내안에서 지워내지 않는다
오래 남아있다
그의 향기가

언젠가 내게 물었지
우리가 보낸 시간들이 사랑 이였을까 하고
.
난 사랑이라 한다
한점 부끄러움 없는 사랑이라고

그가 내 안에 찾아온 그 다음날
난 그를 가을 그림자라 했다
내겐 가을 그림자가 있다
지우지 않을 가을 그림자
그에게 시한구절 지어 보냈지 『가을 그림자』로 하여

내 나이 서른 다섯해 가을날에 얻은 사랑을 읽어보면서

言 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