샌드위치 싸는 아줌마가 된 지 한 달이 되었다.
이제 손님들과 인사도 주고 받을 만큼 여유가 생겼다.
미국 사람들은 인사성이 밝다.
문을 들어서는 그들에게 “Hello!”하면 자기들도 “Hi!” 나 “Hello!”로 대답한다.
내가 싸 준 샌드위치를 들고 가면서 고맙다는 인사도 잊지 않는다.
물론 내가 먼저 인사를 하는 경우가 많긴 하지만, 내 인사에 그들은 답례로 하는 인사를 잊지 않는다.
인사도 그저 ‘고맙습니다’로 끝나지 않는다.
한 사람이 몇 가지 인사를 동시에 한다.
“고맙습니다.”
“좋은 하루 되세요.”
“안녕히 계세요.”
주말이나 명절이나 연말에는 거기에 덧붙인다.
“좋은 주말 되세요.”
“크리스마스 즐겁게 보내세요.”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등등…
물론 대부분 환한 웃음도 잊지 않는다.
내가 일하는 곳은 빌딩 안에 있는 샌드위치 가게라서 대부분의 손님들이 그 빌딩에서 일하는 사람들이다.
어떤 사람들은 하루에도 몇 번씩 들락거린다.
자연히 손님들의 얼굴이 한 달 동안 내게도 많이 친숙해졌다.
사람 얼굴을 잘 기억 못하는 나라고 해도 거의 매일 보는 사람들이니 절로 기억이 된 것이다.
출 퇴근 할 때 빌딩 안에서 사람들과 많이 마주치지는 않지만 간혹 아는 얼굴을 만날 때가 있다.
밝게 웃으며 인사를 건네던 나는 새로운 사실을 발견했다.
그토록 인사성이 밝던 그들이 내 인사를 못 들은 척 살짝 외면하는 것이었다.
처음엔 정말 못 들었거나 좀 별난 사람이거니 했다.
그런데 그런 사람이 많다는 것을 알았다.
오늘은 주인 여자에게 그 이야기를 했더니 웃으면서 자기에게도 그렇다고 하였다.
그들은 가게 안에서만 친절하게 인사할 뿐 가게 문 밖에서 만나면 못 본 척 하고 지나간다고 하였다.
집에 와서 남편에게 그 이야길 하였다.
남편의 반응은 이랬다.
“당연하지.”
그 때 남편의 얼굴에 떠 오른 표정은 샌드위치 싸는 일을 직업으로 선택한 나에 대한 분노를 담고 있었다.
어쩌면 우리가 누리던 기득권을 포기하고 이민을 와서 밑바닥 삶을 살아야 하는 것에 대한 분노인지도 모른다.
물론 즉각적인 내 반격이 있었고 남편은 자기가 말을 실수한 것이라고 후퇴하였다.
그러나 이미 내 안에 자리한 씁쓸하고 섭섭한 마음을 지우기가 쉽지 않다.
그들이 외면하고 지날 때는 웃을 수 있었다.
그들이 날 외면해도 당당할 수 있었다.
너그럽고 여유있는 마음으로 가게에서 만나는 그들에게 더욱 친절한 인사를 건넬 수도 있었다.
그런데 남편에겐 그리 쉽게 너그러운 마음이 되지 못한다.
남편이 자기 실수를 인정했고 그 마음에 순간 스쳐 간 미련임을 알면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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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남편도 용서하기로 한다.
난 지지 않을 테니까…
샌드위치 싸는 아줌마로 성공할 테니까…
내가 사랑하는 삶은, 남편을 따라 파티장에 가서 우아한 대화를 나누는 것이 아니고 열심히 일하는 것이니까…
그러고 보니 용서 받을 사람은 남편이 아니고 나다.
남편이 원하는 우아하고 아름다운 여자가 되지 못하고 샌드위치 싸는 아줌마가 되어서…
“여보, 미안해! 내가 원하는 삶을 고집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