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는 아이낳고 거의 1년만에 친구들 모임에 나가느라고 아이를 친정에 맡겼습니다. 사실 당초에는 착한 저희 신랑이 봐준다기에 어렵사리 맘을 먹고 가려했으나, 자신이 없어서인지 저의 친정에 아기랑 가 있겠다고 하더군요. 그래도 친구들 만나고 바람 좀 쐬고 오라는 신랑이 참 고맙게 느껴졌습니다. 어제, 정말 오랫만에 바깥 공기 마시고 친구들과 수다도 떨며 놀다가 밤이 되어 귀가했습니다. 기분좋게 술도 3~4잔 마시고... 오늘 아침 눈을 떠보니 신랑은 벌써 어머님 병원에 면회를 간 후였고 다녀오더니 오랫만에 장인, 장모님 모시고 식사하러 나가자 하더군요. 그동안 외손주 봐주시느라 애도 많이 쓰셨고 수시로 용돈을 쥐어주시는 친정부모님께 죄송했다구요. "나가서 밥 한끼 사드리자. 맛있는 걸로 내가 쏠께!!!" 신랑의 말에 제가 뭐라 대꾸했는지 아세요? "돈도 없는데 쏘긴 뭘 쏴... 됐어. 그냥 집에서 먹어. 생활비 얼마나 빠듯한데 외식은 무슨..." 그 말에 신랑은 좀 풀이 죽는거 같더라구요. 그러더니 이내 저의 아버지께 함께 나가시자 조르는 것 같더군요. 하지만 저희 아버지... 절대 안나가시겠다며 칼국수나 한그릇 끓여오라고 어머니께 얘기하시더라구요. 저희 힘든 거 아시는 아버지는 절대 돈 못쓰게 하시느라고 허리가 아파서 못나간다는 둥 핑계를 대시느라 바쁘시구요. 배울만큼 배우시고 예전에 큰회사에서 근무하셨던 우리 아버지 내일모레면 환갑이신 나이에 아파트 경비반장으로 일하시고 계신답니다. 이 추운 겨울에... 박봉에... 힘드신 아버지는 그러나 딸내외가 사드리는 밥한끼 맘 편하게 못드실만큼 그렇게 속이 편치 않으신가 봅니다. 사위가 사드리겠다는 점심상 마다하시고 칼국수 한그릇 드시는 아버지 모습 보니까 어찌 맘이 갑갑하던지요. 저라고 내부모 내형제에게 쓰는 돈 몇만원이 아까울리 있을까요. 하지만 정말 딸자식은 다 소용없다고, 맨날 친정에 와서 신세지고 내일이면 서른이 다된 나이에도 부모님 맘 편히 못해드리는 주제에 내것만 여우같이 챙기고 맘속으로 계산기 두드리듯하는 제 자신이 정말 싫게만 느껴집니다. 명절이나 연말이 되면 당연히 챙겨드리게 되는 어르신들 선물이나 용돈... 결혼하신 분들은 이해하시겠지만 시부모님 선물과 친정부모님 선물 고르다보면 어느새 친정부모님의 것이 가벼워지게 되고 용돈 한번 드리려해도 만원짜리 한두장이 몇번씩 봉투안을 들어갔다 나왔다 하게 되고 그렇지요. 저만의 일인지 몰라도... 며칠전 성탄절때에는 시아버님 모시고 식사하고 조그만 선물 사드렸습니다. 그리고 내년 생신때 가족모임식사 비용 저희가 대기로 했구요. 지금 저희부부가 넉넉한 형펀이 아니라 잘해드리지는 못해도 최선을 다하려고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며느리란 자리가 원래 그런 것인지 신경써서 해드린다고 해도 칭찬받기 힘든 법이지요. 언젠가 저희 아버님 저에게 말씀하시는데 무척 서운한게 많으시고 맘에 안드시는 것 같더군요. 어머님 쓰러지셔서 입원하신 후에도 제딴에는 한다고 아이 친정에 맡겨놓고 열심히 병원으로 출퇴근하며 진심으로 어머님 건강 주시라고 기도했는데 그런 맘이 잘 전해지지 않는 것 같아 속도 상하구요. 아기 맡아 돌봐주시고 김치며 밑반찬챙겨주시는 거 항상 친정부모님 차지이지요. 그것 뿐인가요. 사위는 백년손님이라고 항상 어려워하시며 챙겨주시는 친정어머님과 늘 슬며시 제손에 몇만원씩 쥐어주시는 아버지... 하지만 시어른들께 하는 것에 반도 못해드리는 내 모습이 왠지 오늘따라 밉게만 느껴집니다.
오늘 저녁에 아버지를 억지로 모시고 나가 돼지갈비 사드렸습니다. 며칠전에 시댁식구들과는 소갈비 먹었는데... 돈 몇만원에 제가 무슨 청승일까요? 마음으로는 소갈비가 아니라 몇배 비싼 것도 사드리고 싶은데 주머니속 사정 생각하느라 그렇게 못했습니다. 그래도 아버지는 돼지갈비에 소주몇잔을 정말 맛있게 드시더라구요. 그리고 계산하기 전 저의 아이 과자사주라고 또 만원짜리를 제 주머니에 넣어주셨습니다. 아버지에게 괜히 미안한 맘이 들어 집에 와서도 줄곤 기분이 좀 그렇습니다. 언제쯤 생활이 좀 나아지고 돈도 걱정없이 벌어 부모님 실컷 사드리고 여행도 보내드리고 할지...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제가 여유있어 진다고 해도 딸은 딸이기 때문에 받는 것에 더 익숙하고 며느리는 며느리인지라 해도해도 어려운 자리일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이 추운 겨울에 밤샘 근무하는 아버지 생각을 하면 마음이 정말 편치 않습니다. 할아버지처럼 또 큰아버지처럼 그렇게 일찍 세상 떠나지 마시고 오래오래 건강하셨으면 좋겠습니다. 철없이 매일 아버지 가슴에 비수만 꽂았던 이 못난 딸 효도할 때 까지요. 그때가 언제일런지 몰라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