쌀쌀한 바람이 부는 오후 나절 인근에 있는 구립도서관을 찾았어요.
제가 필요한 책은 손뜨게에 관한 것이었는데, 유감스럽게도 모두 대출되어 나가고 한권도 남아있지 않았지요.
손뜨게를 하고 싶은 사람은 바로 초등학교 5학년인 큰 아들녀석이랍니다.
학교에 옆짝꿍이 손뜨게로 요즘 목도리를 뜨고 있는데, 그것이 너무너무 하고 싶다나요?
한번 배워보니 무척 신기하기도 하고, 재미있었던 모양이에요.
"사내녀석이 무슨 뜨게질이여? 고추떨어질라..."
시어머님은 첨부터 깜짝 놀라셨지요.
"그러지 말고, 엄마, 꼭 털실 좀 사줘여...네? 네? 네?"
녀석은 집요하게 조르고 또 졸랐지요.
"그래... 알았다. 하지만 끝까지 니가 꼭 완성해야 해!
하다가 중간에 흐지부지 하면 안 된다.."
다짐을 받아놓고 털실값을 건네주자 얼른 동네 문구점에서 파는
예쁜 하늘색 털실을 사갖고 와서는 목도리를 짜기 시작했지요.
"이그.. 사내녀석이..."
시어머님은 그래도 열심히 뜨게질을 하는 손주가 귀여우신 모양이예요.
목도리보다는 아무래도 더 실용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모자가 낫지 않을까 싶어서 도서관을 갔었는데, 어쩜 한권도 없을 수가....
인터넷을 통해 정보를 알아보니 너무너무 많아 오히려 입이 딱 벌려지지 뭐예요?
너무 예쁘고 상세한 정보들, 그리고 유명하신 디자이너의 작품들까지, 다양하고 아름다운 내용이 많았답니다.
역시 인터넷이란...
대신 다른 책을 두어권 빌려 돌아오는 길, 신호등이 바뀌길 기다리며 횡단보도 앞에 서 있었지요.
아름답게 늙어가는 방법을 쓰는 이후로(전 본래 할머니들 얼굴을 잘 쳐다보며 다니는 편이긴 해요...)더더욱 나이드신 분들을 관심 있게 보고 있지요.
제 옆에 어떤 할머님이 한분 서서 신호등을 쳐다보고 계셨어요.
근데, 어찌나 심술궂게 생기셨는지 저절로 한걸음 옆으로 물러서고 있는 제 모습에 깜짝 놀랐어요.
튀어나온 광대뼈야 한국인의 특징이라 하고, 굳게 다문 입술이 양 옆으로 무겁게 내려와 있고, 입가에 잔주름이 무척 많아 보였어요.
사과바구니를 손에 들려드린다면 영락없이 백설공주에 나오는
'마귀할머니' 같았을 거예요...
신호등이 바뀌자 씩씩한 걸음으로 주위사람들과 몸을 부딪치건, 어쩌건 상관없이 걸으시는데, 왜 갑자기
'이 할머니의 며느리는 어떻게 살까?'
하는 걱정이 들까요?
집으로 들어오는 내내 그 생각만 했어요.
어떤 일이 있어도 얼굴 표정에만은 세상의 고단함을 담지 말자.
살면서 왜 힘들고 어려운 일이 없겠어요?
늘 좋기만 하고, 평안하고 축복처럼 아름다운 날만 계속 되는 인생은 누구에게도 없어요.
다만 그 사람의 마음먹기에 달린 것이지요.
그 할머니도 아주 어려운 일이 많이 있었겠지요.
무엇보다 우리 부모님 세대는 그러한 세월을 살 수 밖에 없었고요.
하지만, 그렇다고 다 그렇게 험한 얼굴 표정은 아니잖아요?
제 주변에 있는 어떤 아줌마가 그러더군요.
심한 욕을 쓰는 할머니는 도저히 참을 수가 없다고..
아무리 그분들의 삶이 고달프고 힘들었더라도, 스스로 정화할 수 있는 것은 정화시키서 말을 해야한다고 하더군요.
"그냥 한귀로 듣고, 한귀로 흘리면 되겠지..."
하고 주변사람들이 설득을 해도, "욕"에 대한 분노를 실컷 터뜨리고 난 후에야 진정할 수 있었어요.
그렇게 따진다면 여자 혼자 어려운 장사를 마다않고 살아오신 저희시어머님은 욕쟁이어야 하고, 얼굴도 마귀할머니여야 하잖아요?
하지만, 저희 시어머님이 외출하시기 위해 예쁘게 화장하시고, 성장을 하시면, 다른 분들이 꼭 여자교장선생님 같다고 해요.
많이 배우시진 못했어도 경우에 맞는 행동을 하시고, 늘 유머를 잃지 않고 살아오셨으니 당연히 좋은 분위기를 풍기겠지요.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최후의 만찬"을 그릴 때 예수님 모델로 성가대에서 열심히 아주 경건한 자세로 성가를 부르고 있는 한 남자를 그렸고, 다시 유다의 얼굴을 그리기 위해 이사람 저사람을 물색하던 중 광장에 술취해 쓰러져 있는 사람을 골라 그림을 그렸대요.
어딘지 이상한 느낌이 들었는데, 그 모델이 한다는 말
"실은 당신이 그린 저 예수의 얼굴로 바로 납니다."
사람이 갖고 있는 얼굴...
참 무섭지 않나요?
거울을 빨리 보러 가야겠어요.
예쁘고 젊고 탱탱한 느낌이야 이젠 없어졌지만
그것말고 얼굴에서 느낄 수 있는
편안하고, 따스하고, 온화한....
내 얼굴에도 그런 것이 있을까?
거울을 보세요.
전 아까 무섭고 화난 듯한, 삶에 지친 얼굴은 진짜 싫어요.
아름답게 늙어가는 거
얼굴에 다 씌어진다는 무서운 사실에
오늘은 정성스럽게 세안을 하고,
오랜만에 크림이라도 듬뿍 발라 맛사지를 하고,
생글생글 웃는 얼굴 연습을 좀 하다 자야겠어요.
물론 그런 좋은 느낌이 드는 얼굴은
피부가 희고 깨끗하고 윤기있고 이목구비가 수려하고....
그런 것이 아니라,
내면에서 우러나오는 것이겠지요?
참,아들녀석이 목도리나 모자를 짜서 완성이 되면 여기에
올려볼게요.
엉뚱한 발상이 귀엽지요.
다들 평안한 밤 되세요.
아름다운 얼굴을 간직하세요.
안녕히 주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