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회 : 218

기억 1.


BY 향초 2002-12-28

하교길 오줌싸고 당황했던 기억.


나는 유치원을 다니지 않았다.
초등학교 입학 전 받은 형식적 교육이란 교회 주일학교에서 여는 여름학교를 일주일간 다녔던 것이 고작이었다.
입학한 학교에서의 기억은 어렴풋할 정도로만 가지고 있을 뿐이고 나는 바로 전학을 갔다.
입학한 학교가 오히려 잠시 적을 두었던 동네의 학교이고 전학한 학교는 기억나지 않는 어린시절부터 자라온 낯익은 풍경 속에 있었다.
아직 학교에 가지 않을 나이인 그 시절 언니 오빠들의 등하교길은 그야말로 어린 친구들의 놀이터였다.
요새 마을버스 정거장 수로 따져도 네 정거장은 족히 될법한 그 길을 우리들은 이따금씩 멀리 원정 나가는 기분으로 우루루 몰려갔다가 한나절이나 지나 또 우루루 몰려오곤 했었다.
일곱살이나 더 나이 많은 언니가 도시락을 가져가지 않은 어느날은 엄마 심부름으로 한달음에 학교에 뛰어가 언니에게 도시락을 주고 살랑살랑 뛰어 갔던 길을 되짚어 왔던 날도 있었다.


그렇게 익숙하던 길이었으니 전학을 했다고 새로 지리를 익혀야 하는 부담도 없었을거다.
그런데 봄이 끝나갈 무렵 학교가 파해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나는 그만 오줌을 싸고 말았던 것이다.
생각해보면 학교에서부터 오줌 마려운 느낌이 들었던 것 같다.
그 때 화장실이란 곳은 학교 건물 뒷문으로 나가 신발을 갈아신고서야 갈 수 있는 그늘진 곳에 있었다.
화장실은 가로로 긴 직사각형의 일층 건물로 되어있고 건물 양옆은 개방된 문으로 되어있었다.
학교 쪽에서 바라보면 화장실 건물 벽 중간 쯤엔 작은 네모 구멍들이 일제히 뚫려있기도 했다.
지금 생각에는 분명 남녀 화장실이 각각 따로였을텐데 그 때인상으로는 화장실이 커다란 한 덩어리라는 느낌이 강력하다.
화장실의 한 쪽 벽 그러니까 학교 건물을 바라보는 벽에는 키 낮은 칸막이가 여러 개 있었다.
그 칸막이 안쪽은 생각하기도 싫을 정도로 지저분했던 기억이 난다.
시멘트 벽에 누렇고 하얗게 얼룩진 덜 마른 축축함, 아직도 습기를 머금고 있으면서도 계속 진행되고 있는 증발의 천차만별한 얼룩들, 생전 처음으로 맡아보는 구역질 나는 냄새.
내 감각 기억에는 그런 냄새가 없었다.
셀 수 없이 많은 남자 아이들이 오랜 기간을 두고 반복적으로 행해왔을 배설의 흔적이 주는 시큼하고 비릿하고 고약하면서 구역질 나는 여러개의 얼룩들을 보다가 기절할 것 같은 기분이 되어 화장실을 뛰쳐나와버렸을거다.
그게 내가 학교 화장실과 만난 첫 기억이다.



아무도 나에게 학교 화장실에 가는 법을 알려준 사람이 없었고 나는 나대로 한 번도 학교 화장실에서 일을 보려 시도했던 적이 없었던 것 같다.
공교롭게도 학교에서 화장실 가기를 처음으로 시도했던 날 정면으로 맞닥뜨린 불쾌와 혐오와 공포 앞에서 나는 뛰쳐나오듯이 화장실 가기를 포기해버렸고 집으로 가기를 서둘렀다.
뛰다가 다리를 비틀다가 하면서 겨우겨우 참으며 집으로 가는 길, 한 오분의 이 쯤 되는 곳에서 그만 오줌이 나와버렸다.
정말 나왔다는 표현이 딱 맞다.
자기 암시 하듯 오줌아 나오지 말아라 하는 주문도 걸며 걷고 있다가 한 번 터지기 시작하는 오줌 줄기를 막을 재간이 없었다.
그 당황스러움과 수치심이란..


엄마가 된 지금은 그 일을 이렇게 생각한다.
우리 아이가 학교에 갈 나이가 되면 입학 전 아이를 데리고 학교에 가서 학교 시설 사용하는 이것저것 등하교길 아이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꼼꼼히 설명해주어야겠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