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아빠가 친정엘 다녀오자고 한다.
다가오는 내 생일을 맞이하여 남편은 꽤 마음 쓰고 있다.
어디 다녀 올까? 며칠 전부터 물어오더니 친정엘 다녀오는 게 젤 낫지싶었나부다.
고마운 사람이다.
그런 고맙고 사랑 가득한 사람이 꼭 무서울 때가 있고 말 걸기 힘들 때가 있다.
무슨 얘기가 되었든지간에 그의 식구들 얘기는 우리 화제에서 제일 다루기 힘든,그래서 퍽 조심스럽게 오고가는 얘깃거리일 수 밖에 없다.
그 문제에 대해 우리 두 부부, 부드러운 감정으로 얘기 나눌 때는 언제가 될련지 모르겠다.
조금씩 좋아지고 있는 것은 느끼지만, 그화제는 늘 시한폭탄 같으다.
조금만 건드려도 제 몸을 터뜨려 나와 아이를 상처내는 폭탄.....
왜 그를 그런 지경으로까지 몰고 가게끔 했는지 나 자신에 대해서도 숙고해 본다,
어디까지나 주관적인 견해일지 몰라도, 난 새로운 가족에 적응을 못하는 예민한 아내였고,그는 그녀를 따뜻하게 감싸주지 못했던 예민한 남편이었던 것 같다.
나는 왜 예민했던가?
많은 식구들의 군집이 정신적,육체적인 부담이었고,합의나 의논이 배제된 명령과 복종의 새로운 체계에 대한 거부감이었고, 나와 그이 식구들을 저울질하는 어리석음, 부셔져가는 젊은 육체와 자유에 대한 아쉬움과 갈망에서 예민했었다.
추상적인 어휘들의 나열은 관두고 있는 그대로 말하자면 그렇다.
스무 몇 해 동안 해본 적이 없는 고된 일을 하고서도 잘한다 칭찬 한번 들을 수 없고,
아이를 임신하고서도 고구마 굽는 남편 곁에서 언 발을 동동 구르며,
내 또래의 젊은 여자에게 일이천원어치 고구마를 팔고 들어와도 추웠지 하며 반갑게 잡아주는 시어른들의 따뜻한 손이 없었던 ,그러한 기억이 나의 가슴 속 깊이 자리잡고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씨앗이 되어 뿌리를 내리고 가지를 뻗어서 누가 조금만 건드려도 흠칫 놀라, 온 가지를 바들 바들 떨고 잎사귀들을 떨구었다.
그렇게 마른, 벌거벗은 몸뚱이를 그가 따뜻하게 감싸 주었으면 했다.
지금은 그렇다.
어쨌든 모두 지난 일이고 현재는 비교적 그이나 나나 모두 안녕하다.
서로 노력하고 있고 잊으려고도 한다.
지나간 모든 불미스러운 일들은,
서로 잎을 다 떨군 마른 몸뚱이들을 부벼 보았자 '불'밖에 더 나질 않는다는 걸 아는지,
적당히 둔감한 척 하고
적당히 피해서 아직 몇잎들을 거느리고 있다.
더욱더 온정을 키워서는 따뜻한 열매를 맺게 하기 위해서
노력하고들 있다.
그래서 음지에서 시작한 메마른 두 그루의 나무가 볕 잘들고 바람 잘 부는 언덕배기에서 커다란 숲을 이루게 될것이라는 희망을 갖어본다.
그런 희망에서 사는 삶이고,
그런게 인생이지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