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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앗간집 외손녀


BY 통통감자 2000-09-08


> 아이구. 내야 새끼새끼 왔는가?

멀리서부터 외할머니는 버선발로 뛰어나오며 두 팔을 벌리셨다.

내 이름은 내야 새끼새끼.

엄마는 외할머니의 새끼이고, 나는 그 엄마의 새끼니까 난 새끼새끼가 되는 것이다.

일본에서 신식결혼을 할 만큼 예쁘고, 멋쟁이셨던 외할머니.

중풍걸려 누운 외할아버지 치닦거리를 하면서도 항상 선녀처럼 고왔던 외할머니.

전라남도 영광군 대마면 홍교리...

그 촌에서 유일하게 서울말을 하시던 서울떡(서울댁) 외할머니.

명절이 다가오는 이 가을날 갑자기 친정엄마도 아닌 외할머니가 떠오르는 건 그 저녁 할머니가 받쳐들고 온 찐 옥수수와 감자 때문일게다.

쫀득쫀득하고 알알이 통통한게 먹으면 입안에서 톡 터지는 그 맛.
옆에 놓인 찐감자를 후후불며 껍질을 까주는 할머니의 손에서 난 흐르는 사랑을 느낄 수 있었다.

> 아야~. 감자는 설탕찍어 먹으면 제 맛이 아니여.
소금을 찍어 먹어야 혀.

아직도 난 감자를 보면 꼭 소금에 찍어먹는다.

혼자서 방앗간일 하시랴 농사지으랴 거칠어진 손으로 볼이며 이마며 머리를 쓰다듬어 주실때, 난 할머니의 무릎에 누워 금새 잠이 들었다.

외할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딸만 셋인 할머니는 혼자 사셨다.

할머니 집에는 문마다 동그란 구멍이 뚫려 있었다.

그 구멍으로 개며 고양이 심지어 닭까지 방안을 들락날락 거렸다.

어느것도 할머니의 소유가 아니다.

다리저는 개, 집나간 고양이, 꽁지빠진 닭까지 모두가 버리고 모두에게 버림받은 그런 짐승들이다.

그 모두를 당신 밥그릇에서 덜어 담아 먹이고 재우셨다.

이름도 없는 외갓집 짐승들.

털이 검으면 거?戮隔? 털이 누러면 누렁이다.

근 반 년을 지내던 거?戮隔?없어지고 난 후 얼마 있다 목에 쇠줄을 단채로 누렁이 왔다.

이렇게 드고 나도 할머닌 아무 상관없이 거둬들이고 내보내셨다.

초등학교 6학년 봄에 할머닌 갑자기 뇌출혈로 멀리있는 이모들이 도착하기도 전에 전남대학병원에서 돌아가셨다.

모두들 선녀가 내려와서 업을 다하고 가신거라 하셨다.

결혼 전 엄마와 함께 외갓집 동네를 다녀온적이 있었다.

지나가던 나를 알은체 하며 건네던 한 할머니가 이렇게 말했다.

> 아이고!! 방앗간 집 외손녀가 저리 컸구나.


외할머니의 모습이 떠오르질 않는다.

하지만 이 글을 쓰면서도 싸아게 아려오는 가슴저림은 내 평생 잊혀지지 않는 외할머니의 사랑때문일 게다.